YS 대통령 당선 앞장서고도 재산공개 파문에 정계 은퇴
‘토사구팽(兎死狗烹)’ 명언 남겨
7선 의원을 지낸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17일 경기 하남시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고인은 강원 철원과 화천 등을 지역구로 제 5ㆍ6ㆍ7ㆍ8ㆍ9ㆍ13ㆍ14대(7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여소야대 정국이었던 13대 국회에서 여당인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전반기(1988∼1990년) 국회의장을 역임한 정치권의 거목이다. 평양 출생으로,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부를 나왔다.
김 전 의장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자당 고문을 지내며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사석에서는 YS와 막역한 친구이기도 했다. 그는 “나야 이북 출신으로 통일이 염원이지만 김영삼은 대통령이 꿈”이라며 “내가 돕지 않으면 누가 돕겠냐”고 발벗고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YS가 집권한 이후 애증의 관계가 시작됐다. 1993년 역사 바로 세우기와 함께 진행된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신고내용 누락 등으로 파문이 일었고, 김 전 의장은 끝내 정계를 은퇴했다. 김영삼정부의 첫 개혁작업에 걸려 여당의 중진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장ㆍ차관, 청와대 참모, 검찰 고위급 인사들이 줄줄이 옷을 벗던 시절이었다.
당시 그는 YS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며, 자신의 처지와 심경을 빗대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이라는 말을 남겼다. 토사구팽이라는 표현은 대중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고, 이후 정치권에서 널리 회자되는 명언 중의 하나가 됐다.
이후 정치권과 거리를 두던 김 전 의장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당시 후보를 돕기 위해 한나라당에 입당해 상임고문을 맡으며 건재를 과시했다. 또한 한일의원연맹 회장, 서울대 총동창회장, 한국 대학동창회 협의회장, 통일고문회의장 등을 지냈고, 1970년 교양지 ‘샘터’를 창간하는 등 다방면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샘터는 1965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를 준비하면서 만난 기능인들이 학교를 다니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하며 만든 것으로, 그는 정계 은퇴 이후 최근까지도 샘터 고문으로 일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용자씨와 아들 성진ㆍ성린ㆍ성봉ㆍ성구 씨 등 4남.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