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의 엘니뇨와 범지구적 온난화의 영향으로 올해 4월도 사상 최고 기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7개월째 정상 기온보다 1℃ 이상 높은 이상 고온이 지속되면서 가뭄 피해로 세계 농가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ㆍ나사)이 최근 발표한 기온관측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평균 기온은 역대 4월 최고 기록을 또다시 경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사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1951~80년 30년간 월별 평균 기온(이하 정상기온)에 비해 올해 4월은 1.1℃가 높게 나타났다. 알래스카 일부와 러시아, 그린란드 서부 등 북극 인근 지역에서는 정상 기온보다 무려 4℃ 높게 나타났다. 나사의 표준이 이른바 파리기후변화협약 체제의 기준인 ‘산업화 이전 수준’ 온도보다 0.3℃ 가량 높은 것을 감안하면, 전세계 196개국이 합의한 ‘온도 상승폭을 1.5℃ 내로 제한한다’는 상한선은 이미 눈앞에 성큼 다가온 셈이다.
4월 관측 결과는 수개월째 이어진 이상 고온 현상에 정점을 찍었다. 최근 7개월은 1880년 이래 정상 기온과 가장 큰 격차를 벌인 최악의 기간으로 꼽히고 있다. 고온 추세가 뚜렷해지면서 나사 측은 올해가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의 앤디 피트만 ARC기후시스템과학센터장은 “기후학자들이 1980년대부터 경고해왔던 사태”라면서도 “기록 갱신 속도는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빨라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기록적인 고온 추세의 원인으로는 지구 온난화와 엘니뇨 현상이 동시에 지목되고 있다. 엘니뇨는 적도 부근의 태평양 온도 변화로 인한 해수 역류 현상을 칭하는데, 특히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엘니뇨는 1950년 이래 역대 3번째로 강력한 ‘슈퍼 엘니뇨’로 관측됐다. 엘니뇨는 해수면 온도를 올릴 뿐 아니라 아프리카, 동남아 지역을 극한 건조 상태로 몰아넣어 지표면 기온 상승까지 불러온다. 더구나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된 호주 연방과학기술연구원(CSIRO) 주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 현상이 엘니뇨의 빈도를 2배 가깝게 높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상 기온은 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며 전세계 ‘밥상 물가’에 적색 신호를 보내고 있다. 동남아의 젖줄이라 할 만한 메콩강 하류 수위는 1926년 이후 90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해 1,800㎢에 달하는 베트남 농지가 타격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동남아의 대표작물인 사탕수수 재배가 어려워지면서 3월 설탕 가격은 전월 대비 33% 이상 폭등해 1년 반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유명 경제전망기관인 IHS글로벌인사이트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16년 엘니뇨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국가들이 입는 피해는 100억달러(약11조7,6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계절성 현상인 엘니뇨가 물러가도 반사 작용으로 라니냐가 이어질 전망이라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라니냐가 발생하면 동남아는 극심한 장마, 중남미 지역은 가뭄 등에 노출된다. 2010년 라니냐 당시 밀 가격이 21%, 설탕 가격이 67% 폭등한 점을 감안하면 올해 곡물 시장에도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저조한 곡물 수확량에 따른 식량 불안이 7월부터 연말까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라며 기후 변화 대응 행동을 촉구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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