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존 카니의 이름은 아직 낯설다. 하지만 그의 연출작인 ‘원스’(2006)와 ‘비긴 어게인’(2013)이라는 영화 제목은 귀에 익숙하다. ‘원스’는 국내에서 23만2,459명이 찾았다. 작은 영화로서는 화제가 됐던 흥행 성적이다. ‘비긴 어게인’의 성과는 더 놀라웠다. 342만9,625명이 보며 다양성영화로는 매우 드문 흥행몰이를 보여줬다. 두 영화의 흥행 수입이 가장 많은 곳은 한국이다. 카니는 이름을 기억하든 못하든 한국 관객들이 유난히 사랑하는 감독인 셈이다.
‘싱 스트리트’는 ‘원스’와 ‘비긴 어게인’ 감독의 신작이라는 수식만으로도 눈길을 끌 만하다. 음악을 앞세우며 음악인을 스크린 중심에 세운 카니의 전작들에 만족해 온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세밀한 감정을 원숙해진 음악과 농익은 연출력으로 전달한다.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중반 불황이 덮친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이다. 가계가 기울며 소년 코너(페리다 월시-필로)는 학비가 싼 가톨릭계 학교로 전학을 간다. 험상궂은 불량 학우들과 신부들의 권위주의에 짓눌려 보내던 코너는 학교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연상의 여인 라피나(루시 보인턴)에게 연심을 품게 된다. 코너는 친구들과 밴드를 하는데 뮤직비디오 촬영에 동참해 줄 수 있냐고 엉겁결에 라피나에게 제안했다가 정말 학교 친구들과 밴드 ‘싱 스트리트’를 만들게 된다. 밴드는 노래를 부르는 보컬을 비롯해 여럿이 모여 구성한다는 정도의 지식밖에 없던 코너는 좌충우돌하며 음악을 배우고,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재능과 사랑의 대상을 발견한다.
‘원스’와 ‘비긴 어게인’ 속 주인공들처럼 코너는 음악에 의지해 불우한 삶을 지탱한다.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음악에 매진하던 코너는 어느덧 사랑을 얻고 희망이라는 미래의 기슭에도 다다른다. 영화는 코너의 질풍노도를 통해 음악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을 스크린에 펼쳐낸다. 어쩌면 코너는 ‘원스’의 남자처럼 거리의 악사로 살다 비슷한 처지의 여성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고, ‘비긴 어게인’의 그레타처럼 뉴욕으로 건너가 부와 명예를 쥐게 될지 모른다. 영화는 코너의 인생 부침 속에 음악이 영원한 등대가 될 것임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1985년 팝에 특별한 애정을 지닌 음악팬들이라면 쉬 빠져들 만한 영화다. 노르웨이 그룹 아하의 ‘테이크 온 미’가 편곡돼 스크린 위를 흐르고, 영국 그룹 듀란듀란의 ‘리오’를 들을 수도 있다.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80년대 분위기의 노래들도 귀에 감긴다. 미국 음악전문채널 MTV의 등장으로 뮤직비디오가 막 유행하던 시절의 시대상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코너가 밴드를 구성한 친구들과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빼어난 뮤직비디오다. 팝 애호가들은 아일랜드에서 만들어진 ‘응답하라 1985’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듯하다. 19일 개봉, 15세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