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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티슈 대신 행주 구입"... 일상으로 퍼지는 '화학물질 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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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티슈 대신 행주 구입"... 일상으로 퍼지는 '화학물질 포비아'

입력
2016.05.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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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사태 후 정부ㆍ업체 못 믿어”

탈취제ㆍ손세정제 등 화학제품

종류ㆍ대상 구별 않고 구입 기피

유통 중인 화학물질 4만여 개

성분표시는 제대로 하지 않아

시민들 천연제품 사거나

직접 만드는 방법 공유하기도

“저희 가족이 이 회사의 세정제를 즐겨 썼는데 혹시 화학물질이 들어 있나요?”

15일 오후 서울 도심의 A대형마트에서 만난 주부 김모(40)씨는 손세정 제품을 들고 점원을 찾아 걱정스레 물었다. 김씨가 문의한 손세정제는 가습기 살균제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가 만든 제품이었다. 상품 뒷면에 적힌 제품 성분을 꼼꼼히 읽던 김씨는 “여기저기 물어봐도 ‘인체에 유해한 성분은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대답만 할 뿐 어떤 종류의 화학물질이 함유됐는지 설명해 주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촉발된 ‘화학물질 포비아(공포)’가 방향제, 탈취제 등 화학물질이 들어간 생활용품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정부의 안일한 대응 못지 않게 업체들의 비양심적 상술이 가습기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생활 화학제품 기피 및 대체상품 이용 사례가 늘어나는 분위기다.

화학성분 들어갔다면 물티슈도 불안

화학물질이 들어간 생활용품 기피 현상은 물티슈, 모기퇴치제 등 제품의 종류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주부 김모(36)씨는 “학부모 모임에서 물티슈에도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들어가 안전하지 않다는 얘기가 돌아 행주를 몇 개 구입했다”면서 “불편하기는 해도 당분간 물티슈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생 두 딸을 둔 직장인 최모(39)씨는 “여름이라 에어컨을 본격 가동하기 전 청소를 하고 싶은데 탈취제에도 화학성분이 들어 있다는 얘기를 들어 유해성 여부가 가려질 때까지 구입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생활 화학제품 매출 감소로 확인되고 있다. 실제 A마트에서는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3일 사이 표백제 판매가 22.6% 감소한 것을 비롯해, 탈취제와 방향제가 각각 16.8%, 15.0%씩 판매량이 줄었다. 다른 대형마트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A마트 관계자는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화학 생활용품 판매 감소폭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라리 천연제품 만들어 쓰겠다” 확산

화학물질에 대한 불신은 천연제품을 구입하거나 직접 제작하는 등 ‘가족 안전은 스스로 지키겠다’는 자구책 추구로 이어지고 있다. 생후 5개월 된 아들을 둔 주부 황모(25)씨는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 맞는 여름이라 대비를 해야 해 천연 모기퇴치제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며 “인터넷에서 제조법을 다운 받고, 에탄올 정제수 허브용액 등 재료도 주문했다”고 전했다. 얼마 전부터 온라인 육아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계피ㆍ녹차를 이용한 살균제 및 베이킹소다를 활용한 탈취제 제조법 등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시민들의 두려움이 커진 데는 당국의 허술한 관리 체계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 유통 중인 화학물질이 4만여개에 달하는데도 제품 성분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아 공포를 배가시킨 것이다. 직장인 장모(45)씨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생활 화학제품을 살 때 성분을 살피게 되지만 자세히 표기돼 있지 않을뿐더러 쓰여 있어도 어려운 화학용어라 인체 유해 정도를 알기 어려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생활화학제품의 전체 성분 공개를 의무화하지 않는 등 정부의 느슨한 관리가 불안감을 키운 주범”이라며 “여러 기관에 분산돼 있는 화학물질 관리 체계를 일원화해 객관적인 허용 기준을 만들어야 시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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