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길! 인사동길만큼이나 옛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이름이다. 옛 지도를 살펴보면 북촌 중심에 여러 길이 모이는 장소가 눈에 띄는데 그곳이 바로 안국동이다.
안국동에 대한 기억 속에는 ‘안국동 로터리’라는 이름도 있었다. 로터리는 1940년 북촌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의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치됐다. 감고당길의 남쪽 끝에서 방사형으로 세 갈래 길이 펼쳐지는데 바로 인사동길, 안국동길, 도화서길이다. 이중에서도 남쪽 방향 종로네거리로 연결되는 안국동길은 가장 번화했다. 그래서 이곳엔 1920년대에 2층 한옥상가와 붉은 벽돌건물이 지어졌다. 지금도 안국동길 양편에는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두 채의 붉은 벽돌건물이 있다. 인사동 진입로 모퉁이에 위치한 집이다. 모퉁이의 집은 도로로 튀어나오듯 위치해 있고, 그 옆의 농협빌딩도 오래된 모습을 갖고 있다. 두 건물은 ‘길은 넓을수록 좋다’는 생각이 지배하던 시기의 도시계획에 의해 한때 사라질 뻔했었다.
역사도시 서울에 대한 관심이 처음 사업으로 이어진 곳이 인사동이었다. 1997년 ‘차 없는 거리’가 시행되면서 인사동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특히 젊은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거리는 자연스럽게 젊어졌지만, 상권이 바뀌면서 고미술과 고서적 그리고 표구점 중심의 거리는 빠르게 편의점과 커피숍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높아진 임대료로 인해 원 상권은 밀려나고 그 자리에 ‘전통’이라는 단어로 된 음식점이 자리 잡았다.
문제는 변화가 업종에 그친 것이 아니라 개발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인사동의 역사에서 기념비적 사건인 ‘열두 가게 살리기 운동’이 있었다. 개발에 맞서 인사동 정체성의 핵심인 작은 가게를 살리기 위해 뜻있는 사람들이 모였고, 시민들이 호응했다. 그 결과가 오늘의 인사동이다. 당시 인사동의 서쪽 경계인 안국동길에 위치한 두 건물의 운명이 풍전등화였었다. 도시계획에 의한 가각정리, 즉 모퉁이의 붉은 벽돌 건축은 철거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공평지구에서 발굴된 15~16세기 조선시대의 유구보존이 화제가 되었던 바로 북측이다.
이곳의 두 건물에 ‘인사동 살리기’ 팀이 주목하면서, 이곳의 역사적 의미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길 모퉁이에서 ‘붓과 화선지’를 취급하는 ‘동헌필방’은 동양화에서는 꼭 필요한 재료를 책임지고 있는 곳이다. 오랫동안 인사동 입구를 지키며 문화거리의 파수꾼 역할을 맡고 있다. 그 옆의 농협은행은 논란의 시작이었던 개발계획을 접고 역사경관 보존을 위해 원 모습을 유지하라는 ‘서울특별시 고시 제2002-27호’를 전격적으로 수용했다. 서울시 역시 기존의 넓은 길 정책을 포기했다. 최근에는 NH농협은행의 노력으로 분홍 색감의 어색한 페인트가 벗겨지고, 1926년 당시의 붉은 벽돌 모습을 되찾았다. 비록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붉은 벽돌 곳곳에 희끗희끗한 흔적이 남아있지만 이는 세월이 새겨준 훈장이다. 두 건물에 담긴 역사와 가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 이어진다.
안창모 경기대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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