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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시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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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시사하는 것

입력
2016.05.1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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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유공(현 SK 케미컬)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세계 최초로 개발되었다. 그리고 2001년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와 PGH(염화올리고에톡시에틸구아니딘)를 넣은 가습기 살균제가 탄생했다. 당시 PHMG와 PGH는 인체 피부에 독성이 적은 살균제로, 충분한 연구를 거쳐 여러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가습기에 넣어 호흡기로 분무할 경우 인체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 물질이 아무리 그전까지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었어도 흡수 방식이 다르면 연구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과학적인 입장이다. 그리고 PHMG가 호흡기에 사용된다는 의뢰를 받은 과학자들도 한결같이 답했다. “안전성을 확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과학자가 아닌 개발자와 판매자, 그리고 허가해준 정부 부처의 관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PHMG란 물질이 지금까지 써오고 있었던 것이라면, 호흡기로도 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냐. 안전할 것이다.’ 이런 간단한 과정을 거쳐, 끔찍하게도, 우리나라는 가습기 살균제가 허가받고 사용되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가습기의 보급과 더불어 건강에 관한 관심과 호흡기 질환에 대한 사회적인 위협의 고조,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하여 안심’ 등의 업체의 홍보 문구를 타고 2011년까지 가습기 살균제는 연간 60만개가 팔려나갔다. 다른 나라에서는 한 개도 팔리지 않는 동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결과는 잘 알려진 바와 같다. 100여 명이 죽었고, 300여 명이 평생 후유증이 남았으며, 피해 상황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게다 피해자들에겐 죽고자 하는 고의가 없었다. 그들은 하등의 의심 없이 인간에게 이롭다는 이 제품을 믿고 사용했다. 그 대가로 피해자들에게 찾아온 간질성 폐 질환은 인간의 폐가 말단부터 섬유조직화되어 굳어가는 질병이다. 사망자는 숨을 막는 고통 속에서 목을 여미다 죽었고, 생존자는 폐를 짓누르는 느낌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돌이켜보면 서로가 서로를 과신했다. 판매자는 어엿하게 허가해준 정부 부처를 믿었고, 정부 부처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판단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이 없었다. 그리고 사용자로 추정되는 전국의 800만명은 이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 중에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기관은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다각도로 분석되어야 한다. 안전불감증에 시달리는 한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 일. 어엿하게 이 제품이 팔리기까지 관여된 모든 정부 부처의 관계자와 인간의 안위와 존엄을 담보로 잡고 매출을 올리던 기업체들, 그리고 과학을 위시한 전문가의 의견이 무시되는 과정, 이 사고는 우리가 겪었던 많은 참사를 다시 떠오르게 한다. 가까이는 관과 기업이 인간의 목숨을 걸고 위험한 판을 벌이다가 결국 바다에 침몰한 세월호가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안방의 세월호'라고 부르는 것도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이 책임소재의 공방에선 지난한 과정이 예견되어 있다. 평생 호흡을 해온 이 환자들에게 단 하나,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함으로 이 끔찍한 질병이 발생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관련 제품에 벌어지고 있는 전국적인 불매 운동은 고무적이다. 이것은 누군가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는 인간 세상의 일이기 때문이다. 판매자들은 인간을 윤택하게 만든다는 명목 아래 이윤을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실제 인간에게 벌어질 수 있는 해에 관해서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떤 사회적인 파문이 일어나는지 살인적인 수증기에 무방비였던 다수의 인간이 실제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엄이 어떠한 가치보다도 앞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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