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이 토굴 생활
문화혁명의 광풍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도 뼈아픈 기억이다. 시 주석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勛) 전 국무원 부총리가 문혁 시기 실각해 가족 전체가 하방(下放)되는 바람에 시 주석 또한 불모의 땅 산시(陝西)성으로 쫓겨나 7년간 시련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시 주석 가족은 1969년 황토고원인 산시성 옌안(延安)시 옌촨(延川)현의 산골 마을인 량자허(梁家河)촌으로 하방됐다. 당시 시 주석의 나이는 열 다섯. 량자허촌 입구에는 '량자허 지식청년 옛터'라고 적힌 비석이 문혁의 현장임을 알리고 있다. “농촌으로 가 배우라”는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라 당시 지방으로 내려간 지식청년과 학생만 수백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마을에는 특히 시 주석이 1971년 직접 파서 4년 동안 생활했던 토굴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황토 산비탈을 파내 흙벽을 세워 만든 토굴은 10㎡도 채 안 되는 좁은 공간으로 시 주석이 당시 사용했던 침상과 침구, 책상, 낡은 셔츠, 어린 시절 모습이 담긴 기념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시 주석은 나중에 '나는 황토고원의 아들'이란 제목의 인터뷰에서 벼룩과의 사투, 고된 막노동으로 힘겨웠던 토굴 생활을 회고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밤늦도록 책을 읽어가며 시대를 고민했다고 한다.
1975년 칭화(淸華)대에 합격하며 이 마을을 떠난 시 주석은 이후 1993년과 2015년 2차례에 걸쳐 마을을 찾았다. 지난해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와 함께 방문했을 때는 “총서기가 돌아왔다”며 주민들로부터 대환영을 받았다. 문혁이 끝난 직후인 1978년 복권된 부친 시중쉰의 묘소도 인근 시안시에 자리잡고 있다.
김현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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