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위, 재심의서 지난달 결정 번복
“도입 취지 훼손” 비난 여론 탓인 듯
12월부터 의무적으로 부착해야 하는 담뱃갑 경고그림이 결국 정부의 원안대로 담뱃갑 상단에 붙여지게 됐다.
복지부는 이날 재심에서 국내외 연구 결과 등을 근거로 상단배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의 효과를 파악하기 위한 국제 비교연구(ITC)에 따르면, 상단이 하단보다 금연 및 흡연 예방 효과가 높다. 또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최근 ‘시선 추적 조사’를 실시한 결과 상단에 부착할 경우 하단보다 응시율이 10~14%포인트 높고, 응시시간도 길었다. 규개위 측은 “경고그림 상단표기의 사회적 편익, 흡연율 감소, 정부의 추가적 입법계획 등 정책효과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논의한 결과 복지부 의견에 동의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규개위가 이처럼 입장을 바꾼 것은 여론의 비판의 워낙 강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달 규개위 결정 후 학계를 비롯한 보건의료계, 시민단체는 경고그림 도입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특히 당시 결정에 참여한 민간위원의 담배회사와의 연관성이 드러나면서 국민 건강보다 담배회사 이윤만 중시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이날 재심는 KT&G 사외이사 출신으로 KT&G 사장직에 공모하기도 했던 손원익(민간위원) 안진회계법인 R&D 센터장과 필립모리스코리아 담배소송을 대리하는 서동원(민간위원장) 김앤장법률사무소 상임고문은 참석하지 않았다.
또 경고그림 도입을 담은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은 2002년부터 11번이나 발의됐지만 번번이 실패하다 13년 만인 지난해 국회를 통과, 올해 12월23일부터 상단에 부착될 예정이었다. 전문가들은 어렵게 시행하게 된 경고그림이 규개위라는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났다고 비판해왔다. 규개위는 정부의 규제정책을 심의ㆍ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17명의 민간위원 중 다수가 친기업적 성향을 띤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성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규개위가 재심에서라도 기업의 이득보다는 국민의 건강이 우선적으로 고려한 결정을 내려서 다행”이라며 “경고그림 도입은 국민 보건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담배회사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JT인터내셔널코리아 등 4개 담배 사업자들로 구성된 한국담배협회 관계자는 “유감스러운 결정”이라며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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