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힙합 대부의 귀환’이라는 사회자의 소개에 멋쩍게 웃는다. 이어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부터 한다. 도끼, 사이먼 도미닉 등 다른 래퍼들이 고개를 쳐들고 양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거만한 포즈를 취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윽고 입을 열었다. “좋은 음악으로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겠습니다.”
그룹 리쌍의 멤버 길(37ㆍ본명 길성준)이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냈다. 2014년 4월 음주운전 물의를 일으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등 방송활동을 전면 중단한 지 2년 만이다.
13일 서울 영등포동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Mnet ‘쇼미더머니5’ 제작발표회에서 길은 “방송에 복귀했지만 팬들과 시청자들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살아가면서 실수에 대해 반성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살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실의에 빠져있을 당시 음주운전이 발각된 탓에 길에 대한 대중의 실망감은 더 컸다. ‘쇼미더머니5’에 참가한 계기에 대해 길은 “초심으로 돌아가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던 중 음악이 떠올랐고 음악으로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그게 반성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MC민지’란 닉네임으로 ‘쇼미더머니5’ 예선에 참가했던 ‘무한도전’ 멤버 정준하에 대해선 만감이 교차한다. 그는 “방송 중단 이후 (정)준하 형을 딱 한 번 봤다.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 (‘무한도전’) 멤버들을 만나는 걸 꺼려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1년 여 만에 준하 형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며 “이유를 모르게 가슴이 찡했다”고도 했다. 당시 방송된 ‘무한도전’에선 정준하의 예선이 끝난 뒤 두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후에도 ‘무한도전’ 멤버들과 만남을 갖지는 않았다.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멤버들이 매일 같이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휴대폰 메시지 창에도 당시 상황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게 길의 설명이다.
프로그램에서 후배 래퍼 매드클라운과 짝을 이룬 길은 맏형이자 힙합 선배로서 8명으로 구성된 새 프로듀서 군단을 이끌며 실력파 래퍼를 발굴하게 된다. 길은 “훌륭한 음악을 알릴 기회 없이 소극장이나 클럽에서 음악을 틀고 믹스 테이프를 팔면서 생계를 잇는 많은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 있다”며 “‘쇼미더머니’ 같은 방송 프로그램이 이들을 양지로 나오게 해 좋은 투자로도 이어졌다”며 제작진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길은 “힙합의 본토라 할 수 있는 미국 출신 래퍼들이 오히려 우리나라의 래퍼들과 콜라보(협업)를 제안할 만큼 국내 수준이 높아졌다”고 평가하며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를 당부하기도 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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