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사회
홍성욱 등 지음
나무, 나무 발행ㆍ504쪽ㆍ2만9,000원
‘과학기술과 사회(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STS)’라는 분야는 독자에게 다소 낯설다. 어려울 것이라 예상하기 쉽다. 출판사 ‘나무, 나무’에서 내놓은 이 책은 바로 이 분야의 책인데, 거리감을 좁혀주기에 좋은 책이다. 500페이지 두께에도 쉽게 읽혔고, 난해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우리 자신과 밀접한 주제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글들의 약 60% 정도가 네이버 캐스트에 연재된 내용으로 구성된 책이니 어쩌면 애초부터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쓰였는지도 모른다.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크게 전반부, 후반부의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에서는 근대 과학사를 통해 실험과 실험실, 과학자, 과학 방법론, 과학지식의 객관성 등이 점검된다. 근대 과학 성립시기에 활약한 프랜시스 베이컨을 비롯, 데카르트, 갈릴레오 갈릴레이, 보일과 홉스, 런던의 왕립학회와 프랑스 백과전서파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과학자들의 실험실이라는 공간이 사회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 보여도 실상은 과학자들의 모든 행위가 사회 속에서 일어나며, 사회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고 그 과정과 결과도 결국 사회로 귀속”된다는 것이다.
후반부는 현대과학을 다루는데 3부는 주로 생명과학 관련 내용이, 4부는 ‘위험 사회’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 현대 사회와 과학의 ‘관계’에 주목한다. 특히 4부의 탈정상과학 개념이나 언던 사이언스, 위험사회와 사전주의 원칙, 위험 분석과 위험 커뮤니케이션, 시민참여와 시민 과학 등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시급한 내용이라서 읽는 동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특히 내 눈길을 끌었던 내용은 라베츠와 펀토위츠에 의해 정립된 탈정상과학론이다.
“탈정상과학은 사실이 불확실하고, 가치가 논쟁의 대상이 되며, 파급력은 크지만 동시에 신속한 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주제를 다룬 과학이다. 기존의 기술적 문제들은 보통 응용과학에 의해서 해결되었고, 이보다 조금 더 불확실성이 큰 문제들은 '전문적 자문(professional consultancy)에 의해 해결된다. 그렇지만 GMO, 기후변화나 원자력 발전 같이 불확실성이 큰 문제는 이런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데 이런 문제를 다루는 것이 탈정상과학이었다. 라베츠와 펀토위츠는 불확실성이 팽배한 탈정상과학 상황에서는 과학의 주체가 과학자 공동체가 아니라 해당 이해 집단과 시민을 포함한 확장된 공동체로 바뀌고, 과학적 사실이 관련 시민과 주민의 경험과 역사를 포함하는 확장된 사실로 확대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탈정상과학의 시대는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증대된 사회이며 기후변화가 지구의 존립마저 위협하는, 얼마 전 타계한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하는 바 대로의 ‘위험 사회’이다. 게다가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할 과학기술은 오히려 불을 지르는 방화범 쪽에 가담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들은 과학기술 커뮤니케이션의 신뢰를 높이고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여 위험 관리에 함께 나서야 함을 강조한다. 시민과학, 신뢰, 소통, 참여가 답이라는 것이다. 원전, 밀양 송전탑,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사태 등 일상이 죽음의 위기와 맞물린 지금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교양서적이자 처방전이다.
이형열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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