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며 지방에서 사는 친구가 하룻밤 자고 갔다. 좁디좁은 우리 집에서 누군가가 자고 간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외국에서 사는 친구들이 오면 하루 이틀 자고 간 적은 있지만, 전국이 일일 생활권 안에 들게 된 뒤부터는 없던 일이다. 서로 좀 뒤척여도 수면에 방해가 되지 않을 거라 믿어 나란히 누웠지만, 막상 눕고 보니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엄습했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혼자 살았던 나만의 불안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1988년이었다. 잡지에 실린 나의 등단작을 읽고 만나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의 내 생각은, 그가 나와 다른 유형의 사람일 거라는 확신이었다. 직접 만나본 뒤의 생각도 바뀌지 않았다. 늘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명랑하고, 여성성이 풍부한 친구가 쓰는 시 역시 내가 쓰는 시와 분위기부터 달랐다. 그런데 어떤 운명에 의해 나는 친구의 첫 시집을 편집했고, 인연은 계속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때 세 권의 시집이 같이 출간되었는데, 다른 두 권의 시집 역시 훌륭했다. 운이 좀 따랐다면 한국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도 있었을 그 시인 중 한 시인은 은거하다시피 살고 있고, 나오는 시집마다 여러 상의 최종심에 올랐던 다른 한 시인은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제정신으로는 살기 힘들다는 세상에서 온갖 독소를 더듬는 촉수 같은 역할을 겸하는 시인들이 애처롭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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