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책 ‘옥상옥’ 논란을 부른 과학기술전략회의가 12일 처음 개최됐다. 그러나 국가 연구개발(R&D) 시스템을 수요자(과학자) 중심으로 바꿔 연구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회의 결과에 대해 과학계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존 조직과 차별화한 새로운 ‘전략’ 없이 현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강조하며 이미 시행방안까지 내놓은 R&D 혁신안을 다시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제1차 과학기술전략회의(이하 전략회의)를 주재했다. 회의에선 황교안 국무총리와 산ㆍ학ㆍ연 전문가, 관계부처 장관 등 총 41명이 참석, R&D 혁신의 필요성과 연구 주체별 역할, 민ㆍ관 협업체계 구축 등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특히 대학과 기업, 공공연구기관이 각각 차별화한 R&D를 할 수 있고 단계별(기초ㆍ원천→개발ㆍ응용→상용화)로 고르게 연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R&D 시스템을 혁신하자는 논의가 이뤄졌다. R&D 중복 투자가 많고 미래를 대비한 원천연구가 부족하며 연구비 지원이나 평가 제도가 비효율적이라는 진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미래창조과학부 내 과학기술전략본부(이하 전략본부)는 이미 지난해 5월 똑 같은 내용의 ‘R&D 혁신방안’을 발표하고 시행한 바 있다. 상용화 연구는 기업이 중추적으로 수행하도록 하고, 정부와 출연 연구기관은 미래 선도형 원천기술 개발과 중소기업 지원에 집중한다는 게 당시 R&D 혁신방안의 골자였다. 정부는 또 R&D의 평가ㆍ관리 방식은 자율성과 책임을 강화하는 연구자 맞춤형으로 개선하겠다고 했다. 1년 전 발표된 이들 방안은 이날 전략회의에서 큰 차이 없이 되풀이됐다.
전략회의는 ‘국가전략 프로젝트’ 신설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미래 성장동력과 경제사회 이슈 가운데 집중 지원할 분야를 선정해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미 지난 1ㆍ4월 국가과학기술심의회를 통해 정보통신기술ㆍ소프트웨어, 생명ㆍ보건의료, 에너지ㆍ자원, 소재ㆍ나노, 기계ㆍ제조, 농림수산ㆍ식품, 우주ㆍ항공ㆍ해양, 건설ㆍ교통, 환경ㆍ기상 등 9개 분야를 중점 투자 기술로 정하고 세부 전략을 마련 중이다.
전략회의는 지난 3월 박 대통령이 국가 R&D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며 신설한 조직이다. 그러나 지난해 유사한 이유로 이미 전략본부를 만든 데다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국과심도 운영 중이라 “정부가 관료조직을 키워 과학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신설 2개월 만에 열린 첫 회의가 수 차례 지적됐던 진단을 되풀이하고 시행 중인 정책을 다시 내놓자 비판은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한 이공계 대학 교수는 “컨트롤타워를 표방하는 조직만 늘면 오히려 현장에선 창의적인 연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더구나 전략회의에선 “국과심의 리더십 보완을 위해 신설된 전략본부가 R&D 컨트롤타워로서의 기능이 미약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가 지난해 9월 출범시킨 전략본부에 대해 1년도 안돼 ‘역량 부족’을 자인한 꼴이다. 양성광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은 “전략회의가 만든 정책을 전략본부가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도 전략회의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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