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사위서 또다시 발목
‘사망ㆍ중상해 의료사고로 한정’
의사들 반발 탓 범위 축소했는데
김진태 의원 등 법안에 이의 제기
“중상해 제외하는 논의 더 필요”
다음 국회로 심의 미룰 것 제안
의료사고 피해자가 한국의료분쟁조정원(조정중재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하면 병원의 동의 없이도 조정절차에 들어가도록 한 ‘신해철법’(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발목이 잡혀있다. 일부 법사위원들이 의료사고에 강제조정은 불가하다는 주장을 하거나, 사망 또는 중상해인 적용 범위를 사망으로만 한정하자며 논의의 진전을 막고 있어서다. 환자단체들은 “더 이상 대상 범위를 줄여서는 안 된다. 조속한 법안 통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의료사고 피해자 유족 등은 12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9대 국회가 5월 말이면 끝이 난다. 사망 또는 중상해 의료사고 발생시 의료분쟁 조정절차가 자동으로 개시되는 제도가 신속히 도입돼야 한다”고 밝혔다.
신해철법은 2014년 3월 오제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다. 의료피해자의 긴급구제를 위해 2012년 조정중재원이 만들어졌지만 신청사건 중 조정이 개시된 사건은 40%를 조금 넘는다. 병원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조정이 개시조차 안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4년 10월 의료사고로 가수 신해철씨가 사망하면서 사회적 관심이 모아졌다.
당초 법안은 모든 의료사고에 적용하는 것이었으나 의사들이“조정신청이 난무할 것”이라고 반발, 적용범위를‘사망 또는 중상해’로 축소해 지난 2월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열린 법사위에서 일부 여당의원들이 법안 통과를 반대하거나 ‘중상해 의료사고’도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유가족이 문제를 삼으면 강제로 다 분쟁조정위로 가는 것은 조금 과한 것 아니냐. 이렇게 되면 의료인의 재판 받을 권리나 직업수행의 자유 같은 것이 심각하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김 의원은 또 “중상해 의료사고를 제외시키는 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며 19대는 시간이 촉박한 만큼 좀더 논의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실상 법안심의를 20대로 미루자는 것이다. 같은 당의 김도읍 의원도 “조정중재원이 사법기관이 아닌데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병원에 자료를 내놔라하는 것이 우려스럽다”며 “조정에 불응하면 제재를 가하는 것은 우리 법체계에 없다”고 법안 통과를 반대했다.
하지만 환자단체 등은 의료사고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고액의 소송비가 드는데다 장기간의 소송 스트레스를 감수하며 의료과실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속히 법이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12일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의료사고 피해자 유족 서동균씨는 “병원에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이례적으로 병원 과실이 80%라는 결과를 받아 냈지만, 소송 비용만 수천만원이 들고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며 “피해자들의 이런 고통을 감안하면 신해철법은 19대에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씨는 2014년 팔꿈치 수술을 받던 큰 딸을 의료사고로 잃었다.
환자단체들은 적용범위도 더 축소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사망 의료사고의 경우 유족이 조정중재원의 조정보다는 소송을 바로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전체 의료사고 중 차지하는 비율이 낮아 범위를 사망사고로만 한정할 경우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복지부도 중상해 의료사고가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진엽 복지부 장관은 법사위에서 “1개월 이상 무의식 상태로 빠졌거나, 장애등급 1등급에 속하는 분들은 추가해서 구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해당 법안은 다음주쯤 열리는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다시 논의될 예정이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