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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초-쿠키-기프티콘.. '작은 성의'가 난감한 교사들

입력
2016.05.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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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시행령 여파에

15일 스승의날 앞두고

3만원 이하 선물 대응 고심

받자니 “뇌물로 비칠라” 우려

뿌리치자니 “성의 무시” 뒷말

학부모는 합법목록 공유하기도

인천의 한 중학교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정모(34ㆍ여)씨는 돌아오는 스승의날이 달갑지만은 않다. 지난해 스승의날을 앞두고 곤욕을 치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당시 학교를 찾은 한 학부모가 명품 브랜드 D사의 유명 립글로스를 건넸지만 정씨는 “마음만 받겠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학부모는 “면세점에서 구입해 3만원도 안 되니 부담 갖지 마시라”고 말하며 굳이 선물을 놓고 떠났다. 선물을 돌려줄 기회를 놓쳤던 정씨는 이후 학부모들 사이에 선물을 받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너도나도 성의표시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통에 결국 교감과 면담까지 하게 됐다. 정씨는 11일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징계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 올해는 꽃 한 송이도 받지 않겠다고 학부모들에게 통보했다”고 말했다.

15일 스승의날을 앞두고 선물을 사이에 둔 학부모와 교사 간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선물=촌지’란 인식이 자리잡은 상황에서 교사는 괜한 구설에 오를까 두려워 선물을 극구 사양하지만 학부모는 ‘내 자식만 빈손이면 어쩌나’하는 걱정에 어떻게든 선물 전달을 위한 묘안을 짜내고 있어서다.

올해 스승의날 선물 키워드는 단연 ‘3만원’이다. 현행 공무원행동강령과 9일 입법예고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의 여파로 공직사회의 접대 근절 분위기는 한층 강화된 상황. 이 때문에 많은 교사들이 선물을 거절하고 있지만 행동강령이 허용하는 3만원 이하 선물의 경우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아 무작정 뿌리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학부모들은 아예 합법적 선물 목록을 만들어 공유하기도 한다. 초등학생 세 자녀를 둔 구모(42ㆍ여)씨는 “3만원 가량의 유명 제과점 쿠키나 브랜드 텀블러, 입욕제, 향초 등을 들고가 선생님에게 재차 권유하면 십중팔구는 거절하지 않는다”며 “큰 아이 입학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1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을 덥석 건넸다가 무안을 당한 뒤 서로 부담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선물을 고르는 요령을 터득했다”고 말했다.

모바일 상품권이나 기프티콘(온라인에서 상품을 결제하고 오프라인 상점에서 해당 품목을 교환하는 쿠폰)도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선물 아이템이다. 현금과 동일시하는 종이 상품권과 달리 모바일 상품권 등은 상대적으로 보내기도 쉽고 촌지라는 생각도 덜 들어서다. 학부모의 이런 심리를 파고 든 유통업체들도 스승의날을 맞아 3만원짜리 기프티콘 상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모바일메신저 업체 K사 관계자는 “기프티콘은 수신 거부 절차가 번거로워 선물을 취소해 달라는 요청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반면 교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다. 규정 내에서 선물을 받자니 특정 아이를 잘 봐달라는 뇌물로 비칠까 부담이 되면서도, 한편으론 마냥 거부했다가 ‘성의를 무시한다’는 학부모와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 S초등학교로 부임한 교사 정모(28)씨는 “스승의날 학생 편으로 보내온 선물은 물론, 학교를 찾은 학부모 선물까지 모두 돌려보냈더니 ‘담임이 융통성이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차라리 값이 비싸면 거절해도 이해를 할텐데 소액이니 받기도 안받기도 애매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금액의 크고 작음을 떠나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물질이 오가게 되면 신뢰가 깨질 수 있다”며 “‘선물을 안 해 자녀가 미움 받지 않을까’하는 걱정보다 믿음을 갖고 지켜봐 주는 것이 교사의 자긍심을 살려주는 참된 스승의날의 의미”라고 당부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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