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취임식을 앞두고 있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 당선인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고대하던 초청장을 받아들고 새 정부의 첫 국제회의 참석을 결정했지만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어떻게 비켜가느냐 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11일 논평을 통해 대만 독립성향의 민진당 차기 정부를 향해 “양안(兩岸ㆍ중국과 대만)관계의 근간인 ‘92공식’(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키로 한 합의)을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인민일보는 1면 머리기사에서 “92공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양안관계의 공동 정치기조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중국의 공세와 차이 당선인 측의 고민은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릴 세계보건총회(WHA) 때문이다. 차이 당선인 측은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 국제회의 참석을 결정했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보내온 초청장에는 예년과 달리 ‘하나의 중국’ 원칙이 언급돼 있었던 것이다.
차이 당선인과 민진당은 WHO가 초청장을 보내는 과정에서 중국이 홍콩 출신인 마거릿 찬 WHO 사무총장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민진당은 “WHO 측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참석 조건으로 걸어서는 안된다는 성명을 제출할 것”이라고 발끈했다.
중국의 압력 행사 여부와는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차이잉원 정부는 92공식에 대한 입장을 어떤 식으로든 표명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될 공산이 크다. 그간 차이 당선인은 중국의 거듭된 압박에도 불구하고 92공식의 수용을 거부한 채 양안관계의 현상 유지를 주장해왔다.
차이 당선인과 민진당은 일단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전략을 택했다. 차기 정부 대변인은 위생부장 내정자 참석 계획을 밝히면서 “초청장에 적시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는 건 아니다”고 말끝을 흐렸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과 미국 간 갈등의 한 축에 대만 문제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독립성향 정부가 들어서는 만큼 중국으로선 어떻게든 ‘하나의 중국’ 원칙을 못박아야 할 상황이고 이에 따라 차이잉원 정부가 받는 압박과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양정대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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