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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문들

입력
2016.05.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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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한 건물 앞에서 나도 모르게 멈춰 섰다. 발길을 잡은 것은 여러 가구가 살고 있는 그 건물의 문이었다. 반들반들한 회색 대리석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의 문인데, 문양을 넣은 커다란 두 짝의 나무문에는 쇠로 된 둥근 손잡이를 달았고, 문양을 중심으로 여덟 조각의 투명한 유리를 대어 계단이 있는 실내가 보이도록 했다. 적당히 현대적이고 적당히 고전적인 그 문을 보자, 곧 어떤 소중한 기억이 되살아날 것처럼 기분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돌아서면 다시는 그것을 기억해낼 수 없을 것 같아 잠시 머물렀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디자인이 강조되는 요즘엔 지나다니며 보는 집들의 문도 멋스러워 보는 맛이 있다. 창문에 끌려 집을 샀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으니 어떤 문은 예술작품이라 해도 과장되지 않을 듯하다. 그에 비해 낡은 우리 집의 쇠 대문은 삭을 대로 삭았다. 두 짝을 활짝 열면 지지하는 쇠의 마지막 조각이 부서질 판이라 늘 한쪽 문만 열며 살고 있다. 새로 산 냉장고에 문제가 있다며 전액 환불해주겠다는 제의도 대문 때문에 거절했다. 심술궂은 시어머니처럼 성질을 부리는 그 냉장고에 음식을 보관하며 여름을 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릿속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진다. 두 짝의 대문을 활짝 열어젖혀 본 지가 언제였던가. 문을 마음껏 열어젖힐 수 없다는 사실을 되뇌고 있는 지금 내 기분은 잿빛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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