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잦아들고 이제 진달래도 떨어졌습니다. 산자락에 있는 우리 집은 아늑하게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죠. 봄에 아이들 키우기에 딱 좋은 전경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집 주변에 무슨 일이 생겼습니다. 낯선 이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자꾸 우리 집을 훔쳐봅니다. 조용히 아이를 키우고 싶어 애써 장만한 집터인데 말입니다.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잘 가려진 곳을 찾느라 애먹었습니다. 주변에 우리 집을 넘볼만한 이들이 있는지도 알아보느라 시간도 많이 걸렸죠.
그런데 낯선 이들이 나타나면서부터 한밤중에 탐조등을 비춰대고 집 앞의 가림목도 잘라내 버렸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이 사는 안방이 허무하게 드러났습니다. 이제 이 어린 자식들을 어떻게 키울까요? 하도 사진을 찍어대니 집에 들어가기도 난처합니다. 자식들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어야 하지만 집 주위만 어슬렁거리게 되니 한창 자라나야 하는 어린 것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이렇게 자라나서 어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동물들에 대한 사진 촬영, 특히 번식기 새들에 대한 사진 촬영 문제를 새의 입장에서 얘기해봤습니다. 누군가 나와 아이를 찍기 위해 우리 집 앞에 몰래 숨어서 기다리거나 애써 침실을 가려둔 커튼을 잘라내 버린다면 느낌이 어떨까요? 허락도 받지 않고 마당을 기웃거리거나 유리창에 서서 빠끔히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누군가를 발견한다면 몽둥이를 들고 쫓아갈 일입니다.
야근을 하고 돌아오는 아버지 손에 들린 야식거리가 ‘자식을 위한 사랑’이라며 사진을 찍어대면 참을 수 없는 일이죠. 자식을 잡아다가 아파트 난간에 올려 놓고 이를 구하려고 발버둥치는 부모를 찍어 놓고 모정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웃긴 일 아닐까요? 이도 모자라 여기저기 사진을 올려 자랑하는 ‘찍사(사진 찍는 사람의 줄임말)’들이 온통 집 주위를 둘러싸면 참으로 난처할 일입니다.
특히 어린 새들은 빠르게 성장하므로 곧 둥지가 비좁아 집니다. 그러니 빨리 비행능력을 얻어 둥지를 벗어나야 하죠. 이를 위해 깃털 중 비행 깃이 빨리 자라야 합니다. 솜털로 태어난 황조롱이는 모든 깃이 돋고 둥지를 떠나는 데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습니다.
비둘기만 보더라도 날개 깃이 자라는 속도가 하루 5-8㎜ 수준입니다. 이렇게 20~30일간 ‘꾸준하게’ 성장해야 올바른 깃이 만들어지죠. 죽순처럼 지속적으로 자라야 합니다. 만에 하나 중간에 영양공급이 제한되면 깃털 생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마치 사람의 손톱에 굴곡이 생기는 것처럼 변형이 발생하지요.
이렇게 변형이 생기면 나중에는 부러져 버립니다. 새의 깃털은 포유류의 털과 달리 짧게는 몇 개월, 길면 3년 이상을 사용합니다. 깃을 교체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러져 버리면 다음 번 깃 갈이 때까지 그대로 있어야 합니다.
과연 이렇게 상한 깃으로 비행이나 사냥연습을 제대로 할까요? 먹이감이 되는 동물은 포식자를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을 갈 것이고 잡아먹는 동물은 도망가는 먹이를 꼭 잡아야 생존합니다. 정상적으로 태어난 어린 맹금류가 이듬해 봄까지 살아남는 비율이 20%가 채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깃을 가진 동물이 20%에 들어간다는 것은 기적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겠죠.
지난해 사진촬영 때문에 수리부엉이와 큰 소쩍새의 둥지 훼손 문제가 일어나더니 올해는 안산 대부도에서 수리부엉이에게 비슷한 문제가 발생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모든 것을 다 법으로 정하고 규제할 수만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자율성과 동시대의 윤리, 상식이 그래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지킬 것은 지켜야 소위 ‘윤리’와 ‘도덕’을 아는 인간이 되지 않을까요?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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