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키 하나로 모든 방 감시
과도한 상-벌점제 인권침해 초래
반발한 학생이 홈피 해킹하기도
학생 주거권 확대 도입 취지 무색
“인원 많아 엄한 수칙 필요” 해명
교내 민자기숙사에 거주하는 서울 A대 4학년생 B(24)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수업을 다녀온 사이 사감 C씨가 자신의 방을 불심검문한 사실을 알게 된 것. C씨는 이미 관리ㆍ감독을 명목으로 불시에 기숙사생 방에 들어와 청소 상태를 점검하고 벌점을 매기는 공포의 대상으로 악명이 자자했다. 방을 비워도 예외는 없다. 마스터키 하나로 모든 방을 감시하는 C씨를 기숙사생들은 ‘빅브러더’로 부르고 있다. B씨는 10일 “요즘엔 부모가 초등학생 자녀의 일기장도 감시를 안하는데 비싼 기숙사비를 감당하면서 사생활 침해를 당하니 황당하다”며 “다음 학기엔 기숙사에 지원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호화 고비용 기숙사 논란을 빚었던 대학 민자기숙사가 ‘갑질 운영’으로 또 한 번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극심한 주거난에 선택지가 줄어든 학생들이 비싼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민자기숙사에 둥지를 틀었지만, 불심검열과 엄격한 상ㆍ벌점 제도 운영 등 과도한 인권침해로 원성의 목소리가 높다. 민간 자본을 유치해 학생 주거권을 확대하겠다는 민자기숙사 도입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자기숙사는 이미 값비싼 주거비로 비난의 표적이 됐다.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지난해 서울 5개 대학(건국대ㆍ고려대ㆍ동국대ㆍ서강대ㆍ숭실대)의 민자기숙사 한 학기 평균 비용(2인실 기준)은 137만원에 달했다. 학교 직영 기숙사는 물론, 대학 주변 원룸 시세보다 매월 수십만원 이상 돈이 더 든다.
기숙사가 수익형 민자사업(BTO)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현재 전국 108개 민자기숙사 중 BTO 방식으로 지어진 기숙사는 31곳이다. BTO는 기숙사 설립ㆍ운영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목적회사(SPC)가 일정기간 투자 수익을 회수한 뒤 학교에 소유권과 운영권을 넘겨주는 사업 방식. 기숙사비로 수익을 내 비용을 충당해야 하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어 건물은 캠퍼스 안에 있어도 학교가 경영에 개입하기 어려운 구조다.
실제 BTO 방식인 A대 기숙사는 대학 직영기숙사보다 훨씬 까다로운 기숙사생 규칙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사생은 의무적으로 월 2회 사실 점검을 받아야 하는데 불참자 방은 사감 혹은 조교가 임의로 들어갈 수 있다’는 규칙이 대표적이다. 한 기숙사생은 “사감이 불심검문을 한 뒤 ‘퇴사조치 하겠다’는 협박을 일삼고, 이삿짐을 옮길 때에도 다른 사람의 출입을 막아 애를 먹은 동료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민간기업이 정한 규칙이 통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으나 학생들이 불만을 제기할 창구는 딱히 없는 실정이다. 급기야 D대 민자기숙사에서는 얼마 전 기숙사 홈페이지가 해킹당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규칙 위반으로 벌점이 쌓여 퇴사 당하는 사생들이 속출하자 일부 기숙사생들이 사감 아이디로 로그인해 벌점을 지웠다가 들통이 난 것이다. 3년간 기숙사에 거주한 이모(22ㆍ여)씨는 “벌점 제도가 너무 가혹하다보니 이를 만회하려다가 벌어진 일”이라고 털어놨다. 이 학교는 기숙사생 10여명으로 구성된 기숙사자치위원회가 의견을 수렴하고 기숙사 살림을 맡아 왔지만 올해는 지원자가 없어 자치위원회조차 꾸려지지 않았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자치위원회가 학생들과 학교, 기숙사 측을 매개하는 역할 해온 점에 비춰보면 사실상 기숙사생들의 언로가 사라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학들은 민간기업이 기숙사의 운영권을 행사하는 만큼 어느 정도의 통제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서울 한 사립대 관계자는 “민자기숙사는 직영보다 수용 인원이 3배 정도 많은 만큼 보다 엄격한 수칙이 요구되는 건 맞다”며 “인권침해는 기숙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극히 일부분의 사례”라고 말했다.
심현덕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비용 문제를 떠나 민자기숙사 내에서 횡행하는 비민주적 운영 요소를 제거하지 않으면 청년 주거난의 대안으로 자리잡지 못할 것”이라며 “운영기업의 횡포를 견제할 자치기구 설치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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