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블레즈 디아뉴

입력
2016.05.11 04:40
0 0

[기억할 오늘] 5월 11일

세네갈에서 태어나 1914년 프랑스 국회의원이 된 블레즈 디아뉴. 그는 제국주의 프랑스의 식민지 '동화주의'의 성과이자 상징이었다.
세네갈에서 태어나 1914년 프랑스 국회의원이 된 블레즈 디아뉴. 그는 제국주의 프랑스의 식민지 '동화주의'의 성과이자 상징이었다.

블레즈 디아뉴(Blaise Diagne, 1872~1934)는 프랑스 식민지 세네갈 출신 프랑스 첫 흑인 국회의원이었다. 그는 프랑스의 식민지 ‘동화정책’의 적극적 동조자로, 세네갈을 비롯한 아프리카인의 프랑스 시민권 확보와 동등한 권리 보장을 위해 힘쓴 정치인이었다. 어려서 기독교인 가정에 입양돼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았고, 관료가 된 뒤 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 콩고(현 콩고민주공화국), 기니 등지에서 근무했다. 그는 1914년 의회 선거에서 세네갈 대표로 국회의원이 됐다.

그 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그는 수상 클레망소와 협상을 벌여 아프리카인이 참전할 경우 당사자에게 프랑스 시민권을 부여하고 서아프리카에 학교와 병원을 증설해줄 것을 요청했다. 서부ㆍ중부 아프리카인 약 16만여 명이 참전해 약 20%가 전사한 것은 그의 탓이었고, 살아남은 12만여 명이 프랑스 시민이 된 것은 그의 덕이었다.

프랑스 동화정책과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일체를 동일시하는 것은 물론 억지스럽다. 일제와 달리 프랑스는 프랑스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프랑스 문화에 익숙한 식민지인에 한해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려 했고, 그럼으로써 장기적으로 식민지를 프랑스화하려 했다. 그런 문화주의적 접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언어와 문화, 전통을 말살하고 정체성을 부정하려 한 것은 일제와 다르지 않았고, 형식적 동화주의에도 불구하고 차별과 억압은 엄연했다. 하지만 우선 디아뉴 본인이 동화정책의 성공적인 표본이었다.

그는 제국주의 종주국을 위해 일하는 식민지 지배 관료였고, 훗날 세네갈 수도 다카르의 시장도 역임했다. 비록 프랑스가 일으킨 전쟁은 아니긴 했지만 자국민에게 제국주의 전쟁 참전을 독려했다. 여러모로 일제 친일파의 행적과 겹치는 면이 많았다. 그는 절대다수가 무슬림인 동포들과 달리 가톨릭 신자였다.

세네갈은 1960년 독립했지만, 다카르에는 지금도 블레즈 디아뉴 대로가 있고, 그의 이름이 붙은 학교가 있고, 디아스의 블레즈 디아뉴 국제공항도 있다. 그가 존경 받는 정치인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우선 그가 애국자이자 휴머니스트였고, 프랑스가 상대적으로 민심을 덜 잃었다는 점 외에도, 아프리카민족주의가 뜨거워지기 전 시대를 산 덕도 클 것이다. 그는 34년 5월 11일 별세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