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TV를 시청하다 보면 굳이 안 봐도 되는 장면과 마주할 때가 있다. 시청자 입장에선 피로도가 상승하면서 리모콘에 손가락을 얹게 되고 여지없이 채널을 돌린다.
반대로 보여주지 않은 뒷이야기가 궁금할 때도 있다. 특히 어려운 도전에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다. TV는 대개 꿈을 이뤄 행복한 현재의 모습을 조명하지만, 시청자들은 험난한 도전에 나서게 된 과거와 이를 극복한 과정에 호기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최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앞의 두 가지 경험을 다 맛봤다.
지난달 22일 이 프로그램엔 개그맨 김영철이 호주의 ‘멜버른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에 참가하며 오랜 꿈을 이루는 모습이 담겼다. 소극장에서 한 시간 남짓 영어로 스탠딩코미디를 펼친 그는 외국인 관객들에게서 박수를 받으며 성공적인 무대를 보여줬다.
“경상도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웃지 않은 사람이 없다”며 자신의 어머니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준비하면서 김영철이 직접 페스티벌을 위해 영어 대본을 쓰고, 거울을 보며 연습하는 장면은 가슴 뭉클했다. 호주에 도착해서도 호텔 방에 틀어박혀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고 공연에 앞서 리허설 무대도 꼼꼼하게 체크하는 데에서는 손에 땀을 쥐고 긴장하게 됐다.
그가 멋지게 무대를 마치고 내려올 때는 박수를 보낸 이도 있을 듯하다. 그런데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다. 과연 김영철이 정말 혼자서 이 모든 준비를 마쳤을까.
방송은 김영철이 멜버른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에 정식으로 초청됐다는 것 이외에 그 뒷이야기는 하나도 들려주지 않았다.
수소문해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다. 넌버벌 퍼포먼팀 옹알스가 보이지 않는 도우미로 활약했다는 사실이다. 채경선과 조수원 조준우 등 개그맨들이 뭉쳐 올해로 10년을 활동한 옹알스는 6년 전 무작정 영국의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한 이후 꾸준히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멜버른 코미디 페스티벌로부터 정식 초대를 받았고, 공연 수익에 따른 출연료 추가 지급 계약까지 맺었다.
김영철은 옹알스의 도움으로 무사히 멜버른에 합류할 수 있었다고 한다. 행사 주최측으로부터 김영철의 공연 허가를 어렵사리 받아냈고, 심지어 김영철을 위해 공항까지 마중 나갔다. 그런데도 방송에서는 옹알스의 ‘옹’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김영철 혼자 모든 걸 준비해서 성공적인 공연을 마쳤다고 생각한 시청자들이라면 황당해 할 사연이다. 개그맨 선배의 꿈을 위해 후배들이 애썼던 흔적을 조금이라도 보여줬더라면 더욱 완성도 있는 방송이 됐을 터다.
연예인 3~4명의 일상을 번갈아 가며 방송해야 하는 시간적 제약을 이해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장면이 빠지니 김영철의 도전이 진정성 있게 와 닿지 않는다.
‘나 혼자 산다’의 출연자들이 무지개 회원이라 자칭하며 품앗이를 하거나 소풍, 정기모임을 갖는 모습은 더불어 사는 법을 제시하며 이 세상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이치를 전한다. 옹알스가 배제된 방송은 프로그램의 주제 의식과도 반하는 내용이라 더 안타깝다.
지난달 29일 ‘나 혼자 산다’는 김지민과의 열애설에 대한 전현무의 해명을 내보냈다. 굳이 안 봐도 되는 장면 대신 옹알스의 뒷이야기를 늦게라도 전했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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