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 까꿍? 자 이제 공부해야지? 여기 모빌을 잘 보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함께 있는 가정의 달이다. 아이를 길러내고 가르치는 부모와 선생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면서, 수년 전 우리 부부의 인생 한가운데로 찾아왔던 아기에 대한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더 정확히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를 대하던 우리 어른들의 태도에 대한 기억이.
나는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기업 경영과 정책 컨설팅을 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하는 일이 새로워 보여서인지는 몰라도, 요즘 들어 ‘알파고’ 시대에 미래의 인재를 어떻게 길러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사석에서뿐만 아니라, 미래 인재상과 교육 정책 등에 대해 컨설팅 요청도 종종 들어온다. 바깥에선 어떤 인재를 육성하고 사람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를 연구하고 조언하지만, 집안에 들어오면 여느 가정과 마찬가지의 고민에 직면한다. 바로 자녀의 교육이다.
내심 아이가 별 탈 없이 잘 자라 국내외의 명문대에 갔으면 좋겠고, 그러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은 어떤 선행학습을 시켜야 하고, 영어는 또 어떻게 가르쳐야 하고…. 대한민국 여느 엄마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아내의 자식 공부 걱정은 벌써 끝이 없다. 학교에 만연한 왕따와 폭력에 대한 걱정도 빠지지 않는다. 우리 아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다. 그때마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모빌을 잘 보라며 ‘공부’를 권했던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 모습에는, 한국인의 일반적 욕망과 의식, 그리고 그 귀결에 대한 많은 함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나는 과문한 사람이라 인간의 능력에 대해 속속들이 다 잘 알지는 못한다. 다만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이 인지능력만은 아니고, 그마저도 유아 때부터의 선행학습과 반복학습으로 사람이 진정 똑똑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안다. 한가지 예외가 있는데, 어느 정도의 머리가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하드트레이닝(대신 자녀가 반발하지 않도록 길들여야 한다!)을 통해 한국의 입시에 적응시키고 어느 정도 랭킹이 높은 대학은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의 행복과 성공은 단순노동이나 게임이 아니지만, 대학입시를 위한 준비는 단순노동이기도 하고 게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의 부모와 조부모들은 이 ‘노동-게임’에 올인해 왔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 학벌만큼 확실한 문화자본도 없었기에 교육 투자에는 벼슬과도 같은 보상이 있었다. 대외적으론 값싼 노동력으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던 나라에서, 이들 ‘학벌 엘리트’가 진정 글로벌한 수준의 능력, 혹은 인간으로서의 품성과 매력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를 기대하거나 묻는 사람은 드물었다. 설령 개개인이 알맹이는 부족하더라도 포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 모든 행위는 ‘노력’의 가치로 정당화되었다. 그 결과, 이제 우리는 학벌 등의 상징적 지대(symbolic rent) 추구를 위해서만 끊임없이 노력한 작은 인간들이 만든 게임의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다.
우리의 아이들이 사회적 인간의 본질을 벗어나 이 작은 나라에서 지대 추구 게임만 일삼는 작은 괴물로 자라나지 않으려면, 이들이 사회에 만연한 탈맥락화된 공부와 생존 게임을 위한 노력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부모들부터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 대부분이 능력이 없어서일 뿐만 아니라, 적어도 남에게 상처를 주고 민폐를 끼치지는 않았으면 해서다. 우리 아이들이 인간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맑은 눈으로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고 소통하며, 다양한 능력을 계발하고 스스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갖췄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앞으로 가정에서부터 많은 대화가 필요할 듯싶다. 나부터 찬찬히 대화를 시작해 보련다.
김도훈 아르스프락시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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