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에드거 후버(1895~1972)가 1924년 5월 10일 미국 연방수사국(FBI) 수장이 됐다. 캘빈 쿨리지 당시 대통령은 29세의 법무부 관료 출신 수사관인 그를 국장 서리로, 그 해 말 정식 국장으로 임명했다.
조지워싱턴대 야간부를 나와 1917년 법무부에 공채로 입사한 그는 법무부 수사과 수사관이 된 지 고작 7년 만에, 수사국으로 승격된 조직의 수장이 됐다. 국장 후버가 아닌 수사관 후버의 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가장 도드라진 게 아나키스트 엠마 골드만(1869~1940)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유럽으로 추방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건데, 골드만을 비롯한 급진 아나키스트들이 ‘징집 반대’시위를 주동한 혐의로 체포된 게 1917년 6월이었고, 추방된 건 그가 불과 3년 차였던 1919년 말이었다. 미국 내 대규모 독일 ‘간첩단’이 적발된 것도 1917년이었다.
FBI는 1908년 법무부 수사부(DOI)로 출범해 수사국(BOI)으로, 미국 수사국(USBI)으로 변천하다 35년 독립기구가 됐다. 해리 트루먼이 1947년 CIA를 창설할 때까지 FBI는 연방 범죄 외에 테러ㆍ간첩 행위 등 국가 안보 전반에 대한 국내ㆍ외 수사ㆍ정보 권한을 독점했다. 후버 체제의 FBI는 자치권을 중시하는 주 정부의 견제를 제외한다면 연방 정부와 의회 내에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발휘하며 조직을 키워갔다. 마피아 소탕, 스파이 검거 외에 첩보ㆍ정보 역량 제고와 요원 채용ㆍ훈련 프로그램 전문화 등 성과도 적지 않았지만, FBI의 주력 활동이 국가안보나 국민 안전보다는 조직 위상강화와 후버 개인의 보신에 맞춰졌다는 비판도 거셌다. 그를 견제하려던 존 F. 케네디와 린든 존슨이 역풍을 맞은 일, 급기야 존슨이 “그 인간이 텐트 밖에서 안으로 오줌을 싸게 하느니 안에서 밖으로 싸게 하는 게 나을 것”이라며 종신 국장에 임명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은밀한 공포의 지배자였고, 선출되지 않은 막 뒤의 권력자였다.
그가 고혈압-심장혈관 이상으로 급사한 뒤 ‘후버의 비밀 파일’존재 여부를 두고 밤잠을 설친 권력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설은 아마 진실일 것이다. 사후 미 의회는 FBI국장 임기를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최장 10년으로 제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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