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버스회사 KD그룹
10년째 위반 내용 일일이 판독
재발방지 약속 강압적 서명 받고
마음에 안 들면 신상 위협까지
“설치목적 外 사용은 인권침해”
사측 “사고 예방차원서 임의 판독”
국내 최대 버스회사인 KD그룹의 광역버스를 모는 A(50대)씨는 운전석이 가시방석과 같다. 회사가 버스 내에 달린 폐쇄회로(CC)TV로 자신을 하루 종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17~18시간 앉아있어야 하는 운전석은 그에게 창살 없는 감옥일 수밖에 없다.
A씨는 “CCTV로 감시한지 10여 년이 넘는다”며 “찍히면 잘리기 때문에 회사에 따지는 기사들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KD그룹이 버스기사 폭행 등을 예방하기 위해 차내에 설치한 CCTV로 기사들을 감시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인권 침해의 소지가 큰 CCTV의 목적 외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9일 본보가 입수한 KD그룹의 ‘CCTV 판독위반 내용 조치 및 확인대장’을 보면 KD그룹은 버스기사들의 운전 중 금지행위를 일일이 판독해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판독은 CCTV 관리부서에서 10여일 간 찍힌 영상을 분석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회사는 그 결과를 영업소 별로 관리, 해당 기사들에게 확인서 등을 쓰도록 하고 있었다.
KD그룹의 한 영업소가 지난달 26~30일 각 버스에 달린 CCTV를 판독, 지난 2일 만든 대장(사진)의 첫 페이지에는 모두 14명의 기사들의 ‘위반내용’이 적혀있었다. B기사는 지난달 16일 숙박 때 요금박스를 차 안에 둔 사실이 CCTV에 찍혀 지적을 받은 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는 약속을 하고 서명했다.
C기사는 같은 달 3일 ‘마스크를 착용하고 운행했다’는 게 녹화됐고, D 기사는 승객 승차 시 자리를 비운 사실이 발각됐다. 나머지 기사들은 휴대전화 이어폰을 귀에 끼고 운행하는 등의 이유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버스기사들은 CCTV 감시가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다고 입을 모았다. 자주 적발되는 기사들은 영업소장이나 안전관리담당 부서에 불려가 모욕적인 언사를 듣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15년 이상 KD그룹에서 버스를 몰았다는 E기사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설치한 차내 CCTV가 기사들의 감시망으로 쓰일지 몰랐다”고 씁쓸해했다. F기사는 “마음에 안 드는 기사들에게는 CCTV 잘 보고 있다고 간부들이 겁도 준다”고 토로했다.
현행법상 CCTV를 설치 목적과 달리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차내 CCTV 설치 목적은 ‘승객안전, 교통정보수집, 사고ㆍ범죄 예방’이다.
KD그룹은 사고방지 등을 위한 회사 방침이라고 주장했다. “랜덤으로 판독, 운행 중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해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KD그룹의 한 관계자는 “기사들의 잘못된 운전습관을 고치기 위한 것으로 특정 개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며 “(회사의) 방침이 있으면 따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허윤 변호사는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은 노동감시는 인격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전했다. 기사들의 동의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선 KD그룹 측은 답하지 않았다.
KD그룹은 대원고속, 경기고속 등 15개 버스회사를 거느린 여객 운송업체로 운행버스만 5,000여 대, 근무인력은 9,5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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