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노던 트러스트 오픈 우승컵은 재미동포 골퍼 제임스 한(35)이 가져갔다. 깜짝 우승이었다. 당시 제임스 한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무명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보다는 2013년 피닉스 오픈에서 약 6m거리의 버디 퍼트 성공 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을 선보인 선수로 더 알려졌을 정도로 동료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이 없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두 살때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2003년 대학 졸업 후 프로가 됐지만 돈이 없어 3개월간의 짧은 프로 생활만을 하고 활동을 중단했다. 하지만 그는 손에서 골프채를 놓지 않았다. 다만 생계를 위해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신발 가게에서 판매ㆍ유통ㆍ고객 응대 업무를 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리치먼드 골프장에 있는 골프용품 판매장에서도 일했다. 돈을 빌려 캐디를 고용하는 등 풍족하지 않은 경제적 상황에서도 골프선수의 꿈을 이어온 그는 지난해 노던 트러스트 오픈 우승으로 PGA투어에 존재감을 과시했다.
제임스 한이 15개월 만에 다시 한 번 PGA투어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8개 대회 연속 컷 탈락이라는 극심한 슬럼프를 떨쳐버리는 우승이었다.
제임스 한은 9일(한국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퀘일할로 골프클럽(파72·7,575야드)에서 열린 웰스파고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9언더파 279타를 친 로베르토 카스트로(미국)와 동타를 이뤄 연장 승부 끝에 통산 2번째 PGA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제임스 한은 우승을 확정하고 “모든 것은 다 나의 아내 덕분이다”라며 아내 스테파니에게 공을 돌렸다. 기자회견에서도 제임스 한은 “한동안 자신감을 잃었다. 나 자신을 믿지 못했다. 최선을 다하지만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좌절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자칫 PGA 투어 출전권을 잃고 2부 투어인 웹닷컴 투어에서 뛰어야 할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는 캐디인 마크 어바닉과 오랜 대화를 나누며 마음을 다잡고 자신감을 재충전했다. 그는 “‘다시 생계를 위해 신발을 팔아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제임스 한은 “투어를 위한 여행비와 호텔 경비를 대려면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꿈과 생계 중 무엇이 중요하냐고 물었다. 이후 골프에 전념했다. 잘한 선택이었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우승상금 130만 달러를 손에 넣은 그는 PGA 투어 참가 자격도 2년 연장했다. 그는 “나는 대단한 팀과 함께하고 있다”며 아내 스테파니와 14개월 된 딸 카일리, 캐디 어바닉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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