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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에 바울로 주장이 대거 채택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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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에 바울로 주장이 대거 채택된 이유는?

입력
2016.05.09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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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엘 그레코가 그린 '성 베드로와 성 바울로'. 베드로(왼쪽)의 왼손이 열쇠를 쥐고 있다면, 바울로의 왼손은 책을 만지고 있다. 두 사람의 차이가 반영되어 있다는 게 이 그림에 대한 일반적 평가다. 초기 기독교 세계에서 패배한 바울로는 이후 모든 차별을 넘어서는 신앙 운동을 시작했다. 도서출판 길 제공
16세기 엘 그레코가 그린 '성 베드로와 성 바울로'. 베드로(왼쪽)의 왼손이 열쇠를 쥐고 있다면, 바울로의 왼손은 책을 만지고 있다. 두 사람의 차이가 반영되어 있다는 게 이 그림에 대한 일반적 평가다. 초기 기독교 세계에서 패배한 바울로는 이후 모든 차별을 넘어서는 신앙 운동을 시작했다. 도서출판 길 제공

“기원후 66년쯤 유대인 반란이 일어납니다. 로마는 예루살렘 일대를 초토화시키면서 1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합니다. 이 때 유대교 주류는 괴멸되다시피 타격을 입는 반면, 초기 기독교 세계에서 패배해 비주류 중의 비주류던 바울로파는 비주류란 이유로 겨우 살아남습니다. 기원후 70~80년쯤부터 세를 얻기 시작했고, 2세기 말 이후 신약성경의 경전화가 진행되면서 예수의 직계 제자와 함께 어울렸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 때까지 가장 빼어난 글을 남겼다는 이유로 바울로의 주장이 대거 채택된 겁니다.”

‘그리스도교의 탄생’(도서출판 길)에서 정기문 군산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흔히 기독교의 뿌리는 바울로에게서 찾는다. 유대인만의 민족종교에서 전세계인을 위한 종교로 기독교가 새롭게 태어난 계기가 바로 바울로에게 있다는 평가 때문이다. 기독교는 예수의 종교가 아니라 바울로의 종교라는 평까지 나온다. 기독교의 보편 정신을 언급할 때마다 바울로가 매번 불려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정 교수는 이 책에서 바울로의 승리 또한 역사적 우연에 불과했다는 주장을 담았다. 우선 바울로의 주장은 그리 파격적이지 않았다. 정 교수는 “바울로 주장의 핵심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 구원으로 이끈다는 것인데 이는 바울로만의 독특한 주장이라기보다 이미 유대교 개혁파 내부에서 자주 나왔던 일반적인 생각에 가깝다”고 평했다. “바울로의 위대함은 그 주장을 처음 만들어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굴복하지 않고 잘 지켜냈고 후대에 기록으로 남겼다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율법이 아니라 믿음을 강조한 것은 유대인만의 특수한 생활습관이 반영된 게 율법이기 때문에 다른 민족에게 설명하고 적용한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바울로는 승리하지 않았다. 신약성경에 대거 포함되어 경전화된 바울로의 편지들은 승리가 아니라 패배의 기록이다. 정 교수는 “예수뿐 아니라 베드로와 바울로 모두 자기들은 유대교의 한 분파이지 새로운 기독교를 만든다는 생각은 가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 때문에 유대인 이외 이방인들 모두에게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울로파는 이단 취급을 받았고 실제로는 패배했다”고 설명했다. 신약에 포함된 바울로의 편지는 “폐쇄적인 기존 유대교 전통으로 되돌아가지 말라고 간곡하게 설득하는 내용”이라는 얘기다. 이 설득 또한 결국 실패했다. 베드로 역시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간 간격을 인정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고, 이런 노선 투쟁에서 패배한 바울로는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된다.

바울로의 이단스러운 주장이, 유대인의 오랜 적이었던 로마제국의 잔혹 행위가 오늘날 교회의 성공에 오히려 기여했다는 역사적 아이러니는 흥미롭다. 동시에 그러한 양측의 공격을 다 받아가면서도 보편 신앙을 밀고 나아가 오늘날 기독교를 탄생시킨 이들의 분투 역시 경이롭다. 정 교수는 “기독교처럼 새로운 제도, 사상, 운동이 탄생하는 데는 예수, 베드로, 바울로 같은 특정한 영웅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개혁을 기원한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16세기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에서 강론하는 사도 바울로'. 도서출판 길 제공
16세기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에서 강론하는 사도 바울로'. 도서출판 길 제공

정 교수의 기독교에 대한 관심은 어릴 적 할머니를 따라 다닌 교회 경험에서 출발했다. 성경을 읽어갈수록 궁금증이 쌓였는데 믿으라 할 뿐 아무도 제대로 설명해주는 이가 없었다. 로마사 전공자로 로마시대를 연구하다 오랜 의문에 접근해가기 시작했고, 이번 책은 20여 년에 걸친 탐색의 결과물이다. 2세기 말 이후 신약의 정경화 과정 등을 추적하는 후속 연구도 내놓을 예정이다.

정 교수는 “어쩔 수 없이 바울로의 서신을 받아들였지만, 그래도 파격적인 주장까지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이 정경화 과정에서 많은 변조 작업을 한다”면서 “이 과정을 복원시켜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학자로서 보기 드문 작업이다. 한마디 덧붙였다. “이런 얘기를 하면 기독교에 반감이 있느냐고 묻는 분들이 간혹 계십니다. 제 작업은 그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종교적 영성을 주신 것처럼 이성도 부여했습니다. 이성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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