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실ㆍ교도소 등 문화재 12곳
수녀사택ㆍ성당도 이달 중 등록
고흥군, 인권ㆍ역사교육장 조성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는 한센인들이 격리와 통제 속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폭행·감금 등 인권유린의 아픈 역사가 배어 있는 건축물들이 많이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대부분의 건물은 몸이 성치 않은 한센병 환자들의 눈물겨운 피와 땀으로 완공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고통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삶의 보금자리였다.
소록도는 근대문화유산의 보고다. 감금실, 교도소 등 12개의 등록문화재가 있고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 사택과 병사성당 2곳이 이달 중 문화재로 등록된다.
고흥군은 역사적, 건축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과 한센인 유품 등 문화재 보전에 힘을 쏟고 있다고 8일 밝혔다. 이번에 지정된 수녀 사택과 성당은 고흥군이 펼친 선양사업의 첫 성과로 꼽힌다.
고흥군 관계자는 “수녀 사택과 성당은 한국 현대사의 슬픈 현실인 소록도라는 갇힌 공간에서 한센인들의 손에 의해 건축된 역사성과 건축학적 의미가 깊다”며 “곳곳에 산재한 문화재를 발굴해 소록도를 역사문화유적지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마리안느(82)와 마가렛(81) 간호사 사택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일본 고급 관리들이 살았던 붉은 벽돌집이다. 두 수녀는 이곳에서 40여년 동안 살았다.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로 1962년과 1966년 각각 소록도를 찾아와 한센인들과 아픔을 함께 나눈 곳이다.
외국인 여성으로서 한국인 남성들도 꺼리던 열악한 환경의 소록도에서 헌신적인 의료 활동을 하며 기거한 두 수녀의 일상이 담긴 곳으로 희생과 봉사의 상징적 공간이다.
일제강점기 건축물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다른 소록도 건물들과 함께 한국의 근대 건축사적으로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38년에 지어진 이후 몇 차례에 걸쳐 보수가 이루어졌지만 원래의 모습이 잘 남아있고 일제의 다양한 건축기술을 볼 수 있다.
1916년 조선총독부로부터 소록도에 강제 격리된 한센인의 유일한 희망은 종교였다. 이곳에는 천주교를 비롯한 기독교와 원불교, 일본의 신사 등 종교시설이 자연스럽게 들어섰다. 한센인들은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종교생활을 통해 고통과 아픔을 스스로 이겨 내고 치유했다.
병사성당은 소록도 한센인의 생활 지역인 병사(病舍) 지역에 1961년 건립한 벽돌조 건물이다. 한센인들이 직접 경사지를 평탄한 지형으로 만들고 바닷가에서 모래를 채취해 벽돌을 만들어 지었다.
한센인들의 육체적, 정신적 아픔을 치유하는 영적 장소로 소록도 병사 지역 내 유일한 성당이다. 두 수녀도 이곳을 자주 찾아 환우들과 미사를 함께 하면서 서로 위로를 주고 받았다.
1960년대에 건립됐지만 현대건축의 세련된 외부 의장과 실용적인 내부 평면 형식을 갖췄다. 한센인들은 성당을 건축하면서 본인의 건강을 기원하고 성당의 오랜 보존을 위해 거북이 형태로 건축했다고 전해진다. 성당 입구는 머리 형태이고 고해실과 성모상 자리는 앞발의 모습이며 동편으로 미사를 준비하는 공간은 뒷발의 형태를 띠고 있다.
서양 종교시설이지만 동양적 건축 형태가 나타난 독특한 외관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4년 5월 4일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소록도를 방문할 당시 한센인들에게 선물한 십자가가 성당 안 제대위에 모셔져 있고 교황이 앉은 의자가 존치돼 있다.
“소록도를 인권의 성지로 조성하겠다”
박병종 고흥군수는 “한센인의 애환이 서려 있는 소록도는 알려지지 않은 깨끗한 자연환경과 역사적 기념물 등 다양한 이야기가 가득한 곳”이라며 “소록도가 가진 역사적 가치를 널리 알려 나가겠다”고 밝혔다.
고흥군은 건축물을 비롯해 한센인 유품 등도 문화재 등록을 추진 중이며 소록도 섬 전체를 문화유산으로 조성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박 군수는 “소록도를 인권의 성지로 조성하고 역사 교육의 장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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