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묵인한 알나이미 장관에
재정적자 급증 책임 물어 교체
신임 수장으로 왕가 혈통 임명
원유 의존 경제구조 개혁에 박차
사우디아라비아 왕가가 7일(현지시간) 알리 이브라힘 알나이미(81) 석유장관을 해임하는 것을 비롯 대대적인 개각을 단행했다. 알나이미 장관은 1995년부터 21년간 석유장관을 맡아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 정책을 좌지우지해온 인물이다. 이러한 알나이미 장관을 전격 해임한 데는 과거 원유에 의존해왔던 경제구조의 폐해를 없애고 새 경제개혁인 ‘비전 2030’에 적극 나서겠다는 사우디 정부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살만 사우디 국왕은 이날 알나이미 장관을 해임하고 석유부의 명칭을 에너지ㆍ산업광물부로 개명했다. 신임 에너지ㆍ산업광물부 장관에는 보건장관 겸 국영석유회사 아람코 회장을 맡아오던 칼리드 알팔리(56)가 임명됐다.
알나이미 장관은 21년 간 석유장관을 역임하면서 현재의 저유가 위기를 초래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미국 석유기업들의 원유시장 점유율을 떨어트릴 목적으로 지난 2년 동안 원유 증산을 통한 저유가 상황을 묵인하는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 재정수입의 72%를 원유 판매에 의존하는 사우디 정부는 직격탄을 맞았다. 사우디 정부의 재정적자는 지난해 980억달러(약 113조2,400억원)에 달했다.
이에 따라 알나이미 장관의 해임은 우선 저유가 위기를 초래한 상황에 대한 책임을 묻는 성격이 크다. 사우디 원유정책에 모하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제2위 왕위계승자가 최근 직접 나서면서 알나이미 장관의 존재감이 대폭 축소됐다는 분석이 제기돼왔다.
특히 사우디 왕가는 지난달 원유 의존 경제구조에서 탈피하는 ‘비전 2030’개혁안을 내놓은 만큼 석유부 명칭 개명과 50대인 젊은 신임 장관 임명을 통해 새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데 알맞은 위용을 갖추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우디 왕가가 석유장관에 알나이미 장관 등 그 동안 관료 출신을 임명해왔지만 이번에 왕가 혈통인 알팔리 신임 장관을 등용한 것도 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국왕의 영향력을 대폭 강화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알팔리 신임 장관은 1982년 미국 텍사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이후 30년 동안 아람코에서 일했다. 아람코 최고경영자 겸 대표이사로 재임 중이던 지난 2015년 5월 보건장관으로 입각함과 동시에 아람코 회장이 됐다. 이후 시장 전문가들은 그가 차기 석유장관이 될 것으로 예측해왔다.
이번 개각에선 석유부 장관을 비롯 경제 분야 장관급 고위직들이 집중적으로 교체됐다. 사우디 중앙은행(SAMA) 총재와 무역ㆍ투자부, 교통부 장관이 바뀌었고, 수자원ㆍ전력부는 전력 부분만은 신설 에너지ㆍ산업광물부로 이관하고 수자원ㆍ환경농업부로 개편됐다.
다만 사우디 왕가는 이번 알팔리 장관 임명 후에도 원유 생산량을 감축할 계획이 없어 저유가 기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이 지난해 7월 핵협상 타결로 서방의 경제제재에서 벗어나면서 원유생산량을 빠르게 증가시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시장점유율을 뺏기지 않기 위해 저유가라는 출혈 경쟁을 이란과 지속하고 있다. 8일 알팔리 장관은 성명을 통해 “사우디는 안정적인 원유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며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사우디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믿을 만한 에너지 공급자로 위치를 확고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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