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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 배우고 대필까지… 엄지족들의 슬픈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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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 배우고 대필까지… 엄지족들의 슬픈 자화상

입력
2016.05.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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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자판 익숙한 20, 30대

어버이날 등 기념일을 앞두고

손 편지 쓰려다 악필로 속앓이

회사원 김광인(32)씨는 어버이날을 이틀 앞둔 6일 볼펜과 흰색 편지지를 붙잡고 연신 머리를 쥐어 뜯었다. 결혼 후 처음 맞는 어버이날을 기념해 장인ㆍ장모에게 직접 쓴 편지를 선물하겠다고 며칠 전 호기롭게 공언한 게 화근이었다. 조선 중기 명필 한석봉처럼 멋들어지게 쓰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장인 장모님께’라는 제목조차 쉽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비뚤빼뚤한 글씨에 몇 번이나 편지지를 찢어버린 김씨는 “글씨가 엉망인 편지를 장인ㆍ장모님이 받아볼 생각을 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며 “속성으로라도 필체교정 학원을 다닐 걸 후회된다”고 토로했다.

‘기념일의 달’이라고 불리는 5월, 손글씨보다는 컴퓨터 자판이 익숙한 20,30대 엄지족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최근 들어 어버이날(8일), 스승의날(15일), 부부의날(21일) 등 주요 기념일에 고가의 선물보다는 손 편지로 감사와 사랑의 표하는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손글씨 쓰기 훈련을 받지 않은 탓에 자필로 편지를 쓰려다 보면 끙끙 속앓이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손글씨 쓰기와 인연이 없는 엄지족들은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 중이다. 대학원생 박모(27)씨는 지난주부터 필체 교정학원을 물색하고 있다. 그가 재학 중인 대학원에선 올해 스승의날 선물을 학생들이 돈을 조금씩 나눠 내 마련하기로 했다. 매년 치열한 선물 경쟁으로 부작용이 속출하자 올해부터 규칙을 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론 교수 눈에 띌 수 없다고 생각한 박씨는 손수 편지를 써 감사의 뜻을 전하기로 결심했다. 평소 손글씨 크기가 작아 좀스러워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는 박씨는 “인터넷으로 여러 필체 교정학원을 비교해 본 뒤 한 학원을 점찍을 예정”며 “시간당 3만원하는 속성과정을 10시간 들어야 하지만 충분히 투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필체 교정 학원들은 요즘 대목을 맞은 분위기다. 3년 전 문을 연 수도권의 한 필체 교정 학원은 지속적으로 수요가 늘자 인근에 분점까지 냈다. 학원 관계자는 “초ㆍ중ㆍ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하나 최근엔 직장인이나 대학생들의 문의도 급증해 단기 속성반을 만들었다”며 “한글날이 있는 10월보다 기념일이 많은 5월에 수강생들이 더 몰린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편지 한 통 쓰려 대필 서비스를 이용하는 웃지 못할 사례도 심심찮게 있다. 직장인 정모(32)씨는 “결혼을 앞두고 여자친구 부모님께 편지 선물하고 싶어 원고지 5매 분량의 편지를 2만원에 대필을 맡겼다”며 “영어도 아닌 모국어를 대필한다는 게 부끄러운 일인 줄 알지만 글씨를 예쁘게 쓸 자신도 없고 부모님 세대는 외모 못지 않게 반듯한 필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니 어쩔 도리가 없다”고 푸념했다.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는 “조상들은 필체에 그 사람의 정서와 됨됨이가 담긴다고 여겼는데 디지털 중심의 생활 패턴이 자리잡으면서 최근엔 청ㆍ장년층 대부분이 글씨 쓰는 자체를 어색해 한다”며 “겨레의 얼인 우리 한글을 바르게 쓰는 교육 프로그램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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