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부담 문제로 동맹국들과 불화를 겪고 있는 미국 공화당 유력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최대 동맹국인 영국에도 날을 세웠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공을 들이고 있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반대 여론에 찬물을 끼얹으며 전방위 싸움꾼의 면모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는 5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방송과 인터뷰에서 “유럽에서 난민 문제가 끔찍한 일이 되어 가고 있다” 며 “EU가 이 문제를 (스스로) 부추겼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영국은 EU를 떠날 때 더 번영할 것으로 본다”면서 “다만 그렇게 권고하는 것은 아니고 내 생각이다. 결정은 그들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6월 23일 실시되는 브렉시트에 대한 국민투표를 두고 찬반 여론이 팽팽히 갈려 있다. 특히 캐머런 총리는 영국 경제의 안정을 위해서 EU에 잔류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피력하고 있다. 앞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민주당의 사실상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브렉시트 반대 입장을 천명하며 오랜 우방의 지도자에게 힘을 실어 줬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캐머런 총리에게 불리한 입장을 표명하며 동맹국 지도자를 난처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자 캐머런 총리도 발끈했다. 캐머런 총리는 이날 영국을 방문 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함께 기자 회견을 갖는 자리에서 “힘든 경선 과정을 거쳐 당을 대표하게 된 사람은 누구든 존경을 받을 만한다”면서도 “과거 트럼프에 대한 비판을 철회하진 않겠다”고 말해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앞서 캐머런 총리는 트럼프의 영국 입국을 금지해 달라는 시민들의 청원 운동에 반대하면서도 “그의 발언들은 어리석고 분열적이며 잘못됐다”고 비판한 바 있다.
서방 최대 동맹국인 미국과 영국의 불화설 확대를 우려한 때문인지 캐머런 총리의 대변인은 기자회견 직후 “캐머런 총리가 트럼프 후보를 ‘정치인 대(對) 정치인’으로 존경한다는 의미”라고 진화에 나섰다. 캐머런 총리 대변인의 입장 변화는 전날 트럼프 후보의 유럽·중동 자문역인 게오르게 파파도풀로스가 언론 인터뷰에서 캐머런 총리에게 트럼프를 비난한 데 대해 사과하거나 발언을 철회하라고 요구한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 한 아베 일본 총리는 ‘트럼프가 당선돼 내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언급이 나오자 “(아베 총리가) 눈에 띄게 히죽히죽 웃다가(smirked) 정색을 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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