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이나 구리 같은 흔한 금속으로 금을 만들려는 기술을 연금술이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수적인 물질이 현자의 돌이다. 현자의 돌을 만들어 금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면 인류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중세시대를 풍미했던 연금술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단위에 대한 통찰과 인식이 부족했던 시절이므로 실패는 예정된 결과였다.
연금술이 전혀 쓸모 없지는 않았다. 다양한 물질을 다루고 연구하는 계기가 됐으며 이 과정에서 도가니, 플라스크 등 수많은 실험도구를 만들거나 개량할 수 있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연금술은 포도밭에 금을 묻어 두었다는 어느 농부의 유언에 비유할 수 있다. 자식들은 포도밭을 정신 없이 파헤쳤지만 금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가을에 포도를 풍성하게 수확했다.”
느닷없이 5월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는 얘기가 나오자 주변에서는 농담 삼아 제각각 ‘임시공휴일 음모론’을 창작하곤 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총선 패배 뒤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결정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많았다. 좀 더 ‘낭만적인 음모론’도 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1위에 빛나는 연간 2,285시간의 노동시간(2014년 기준)을 줄이기 위해 어느 애국지사가 ‘내수 진작’이라는 묘수로 청와대와 재계를 설득했다는 얘기다.
‘낭만적인 음모론’은 연금술에 대한 베이컨의 비유와 많이 닮았다. 최종적으로 원하는 목표(풍성한 포도밭ㆍ노동시간 단축)를 위해 상대방이 유리하다고 생각할만한 정보(매장된 금ㆍ내수 진작)를 흘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이론에서는 임시공휴일 하루가 내수를 진작시킬 것이라는 예측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번 임시공휴일 지정에 의한 경제효과가 약 1조3,000억원이라고 추정했다. 전 국민의 50%인 2,500만 명이 하루 쉰다고 가정하고 여기에 1인당 평균 소비지출액(약 8만원)을 곱한 뒤 해외여행 등으로 유출되는 부가가치를 제외하고 얻은 결과다. 결국 내수 진작의 근원은 ‘휴일’이라기보다 ‘돈쓰기’다. 가계부채가 전례 없이 늘어나고 일자리마저 줄어드는 상황에서 4인 가족이 6일 하루 선뜻 32만원을 쓸 여력이 있을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평소 노동시간 단축에 반대하던 재계와 정부가 이번에 임시공휴일 지정을 주도한 점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 있다. 정부와 재계는 줄곧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는 것에 반대해 왔다. 내수를 진작한다면서 가계의 소비여력을 직접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안은 거부한 셈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6,030원으로, 하루 10시간 일을 해도 1인당 평균 소비지출액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임시공휴일에 가구당 예컨대 32만원씩 일괄적으로 지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돈 많은 사람한테 세금을 더 많이 걷고 돈 없는 사람한테 세금을 덜 걷으면 된다. 정부는 이것도 반대한다.
쓸 돈은 쥐어주지도 않으면서 임시공휴일만 지정하면 천문학적인 경제효과가 생긴다니, 이야말로 현자의 돌로 황금을 만들겠다는 발상이 아닌가. 나라 경제가 어려우니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없는 살림에 빚이라도 내서 1인당 평균 소비지출액만큼 충실히 돈을 뿌려야 하나. 제2의 금모으기 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임시공휴일을 지정하는 이유가 하필 내수 진작인 것은 지극히 국가 중심적인 발상이다. 한때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적이 있었다. 2016년의 우리는 내수 진작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황금연휴를 즐기고 있다. 국민 여러분, 그간 힘들게 고생하셨으니 그냥 하루 더 편히 쉬시면서 연휴를 즐기세요, 이렇게 말해주는 정부는 있을 수 없는 걸까. ‘낭만적인 음모론’에 더욱 끌리는 건 이 때문이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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