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 ‘주류와 비주류’, ‘진보와 보수’, ‘백인과 유색인종’, ‘저학력과 고학력’, ‘엘리트와 서민’….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맞설 2016년 미 대선은 다양한 각도에서 대립각이 형성된다. 그러나 각 후보의 지지자들을 관통하는 이념 혹은 시대정신은 따로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과도 상통하는 ‘통합ㆍ실용주의’와 ‘트럼피즘’(Trumpism)으로도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적 국수주의’(國粹主義)가 바로 그 경계다.
4일 미국 언론에 따르면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이들의 이유는 다양하다. 테네시주 파예트빌에 거주하는 자영업자 캐롤 윌리암스(61)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말하는 모든 게 내가 속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정치 엘리트들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집착해 미국 사회 주류인 백인 서민계층보다 소수 인종, 이민자, 해외 저개발국, 동맹국을 챙기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아버지 부시(조지 H. 부시ㆍ41대 대통령)와 아들 부시(조지 W. 부시ㆍ43대)를 모두 지지했던 골수 공화당원 데비 크라우(55)도 “워싱턴 정치인들은 늘어나는 국가부채와 불법 이민자의 일자리 잠식을 막을 수 없다”며 “트럼프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공화당원 릭 페이델도 “유럽 동맹국이 미군 주둔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당장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해체하고 우리 일에만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우정엽 워싱턴 사무소장은 “지지자들의 다양한 주장은 트럼프 선거전략 전체를 관통하는 ‘경제적 국수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추상적이고 고차원적인 ▦인종 통합 ▦소수자 배려 ▦동맹을 통한 장기적 국익추구 대신, 미국도 당장의 현금 흐름에서 이익을 봐야 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우 소장은 “트럼프가 공화당의 오랜 정책인 자유무역 대신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한 것도 이런 흐름의 또 다른 사례”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유권자들을 끌어 모으는 ‘국수주의’는 새로운 건 아니다. 트럼프가 자랑스럽게 내건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는 70여년 전에도 잠시 광풍처럼 미국을 휩쓸었다.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했지만, 1941년에야 미국이 참전한 건 유료 조직원만 80만명에 달했던 당시 ‘아메리카 퍼스트 위원회’의 강력한 반전ㆍ고립주의 운동 때문이었다.
트럼프 도전에 맞서는 클린턴 진영이 추구하는 시대 정신은 ‘통합ㆍ실용주의’다. 아웃사이더의 강력한 도전에 놓인 워싱턴 정가의 주류적 흐름이기도 하다. 오바마 대통령 지지자와 중첩되는 클린턴 지지자들은 종교ㆍ인종ㆍ성적(性的) 정체성에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클린턴 후보가 2016년 미국에서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는 뉴욕타임스가 말해준다. 이 신문은 지난 1월31일자 클린턴 지지 사설에서 ▦여성ㆍ소수인종을 미국 사회에 통합ㆍ포용할 수 있고 ▦금융개혁ㆍ외교안보 분야에서 급진적이지 않고 실현 가능한 해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클린턴을 지지했다. 자수성가한 대표적 흑인 기업가인 러셀 시몬스 글로벌그라인드 대표는 허핑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트럼프의 허무맹랑한 주장보다 이상과 현실을 두루 살피는 클린턴의 정책이 미국 사회 발전에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클린턴 지지자들의 이런 성향은 유럽 난민사태와 이슬람 급진세력의 테러 사건 등으로 지구촌에서 비관주의가 확산되고 있지만, 세계화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거듭 강조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