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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우리도 훗날 ‘할마’가 될 수 있을까

입력
2016.05.0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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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관계는 딸이 엄마가 되면서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맞는다. 제아무리 지금껏 야무지게 앞가림을 해온 딸이라도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의 도움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한쪽이 다른 한쪽의 도움이 필요한 관계, 이는 언제든지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나는 비교적 엄마 속을 썩이지 않고 자랐다. 대학입학과 취업 그리고 결혼까지 대개는 알아서 한 편이니 말이다. 하지만 육아는 달랐다. 알아서 하기에는 몸과 마음이 힘들었고 한 생명을 키워내는 일은 지금껏 내가 해왔던 일과는 차원이 달랐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고 떠오르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떠나갔던 엄마의 손길이 내가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돌아오지는 않았다. 엄마는 엄마만의 생활방식이 있었고 나의 육아는 어디까지나 전업주부인 내 몫이라 생각하셨다. 문제는 나 역시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말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파서 도저히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엄마에게 아이를 부탁하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거듭되자 내 안에서는 서운한 감정이 쌓여 만 갔고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그 마음은 일순간 폭발했다. 철들고 나서는 처음으로 엄마 앞에서 목 놓아 울며 날이 선 말들을 마구 쏟아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생각도 못 했던 엄마와의 갈등이었다.

엄마가 된 딸은 그제야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기는커녕 엄마와 갈등한다. 나와는 반대로 육아에 많은 힘을 보태주시는 엄마와 딸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육아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 선을 넘는 사생활 간섭, 육아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 문제 등 이래저래 부딪힐 일이 많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할머니가 아이를 돌봐주는 워킹맘인 친구는 요즘 육아 도우미를 알아보고 있다. 그러는 편이 자신과 엄마에게 나은 길이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엄마들은 많지 않다. 그러니 모녀 사이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어떤 기사를 읽으니 저학력 엄마와 고학력 딸 간의 육아를 둘러싼 모녀전쟁이 아이에게 애착 손상을 일으켜 나중에 문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황혼 육아가 널리 퍼진 지금 눈여겨 봐두어야 할 만한 이야기다.

그런데 대체 우리는 무슨 권리로 우리의 엄마에게 내 아이를 맡기는 걸까. 혹은 엄마가 나의 육아를 도와주길 기대할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구실을 내세우며 우리는 분명 엄마들의 조건 없는 희생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원래 자식 사랑은 내리사랑인 법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나중에 할머니이자 엄마인 ‘할마’가 될 수 있을까.

내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결코 ‘할마’가 될 생각이 없다. 전(前) 세대의 엄마에 비해 희생정신이 약한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그런데 이 이기적인 마음은 사회에서 배웠다.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이 되라고 배웠고 여자라도 자아성취를 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든 후일지라도 내 자식에게 희생하거나 반대로 기대고 싶지 않다. 주위의 친구들에게도 물어보았다. 나중에 할머니가 되면 손자를 봐 주겠냐고. 제각각 부연 설명은 붙었지만 결론은 그럴 수 없다가 많았다. 한 친구는 이런 말도 한다. “내 아이도 내가 안 키워봤는데 손자를 어떻게 키워. 근데 그때는 굳이 우리가 아기를 안 봐줘도 되는 세상이지 않을까.” 아, 내리사랑은 우리 세대에서 끝인 건가. 지금 세대의 엄마들은 엄마의 사랑은 많이 받아 놓고 정작 내 아이에게는 절반의 사랑만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머지 절반은 다시 우리의 엄마들이 채워주고 있으니까. 때아닌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는 이 시대의 ‘할마’들이 참 불쌍하다. 딸들도 위로해 주지 못하는 그녀들의 노고는 누가 알아줄까.

어버이날에 드릴 용돈을 뽑기 위해 현금 지급기 앞에 섰다. 순간 고민이 앞선다. 챙길 게 많은 5월이라 벌써 생활비가 빠듯하다. 하지만 큰 맘 먹고 숫자를 누른다. 감정 없는 종잇조각이지만 못된 딸들이 앞세대의 엄마에게 드리는 작은 위로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정미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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