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영화제를 갈 때마다 ‘사건사고’ 소식을 접한다. 대부분 해외 언론 보도인데 확인은 대체로 불가능하다. 2009년 칸국제영화제를 찾았을 때는 해외 언론을 인용한 국내 보도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덴마크 영화 ‘안티크라이스트’를 본 어느 관객이 실신하고 몇몇 관객은 구토를 했다는 소식이었다. 남녀의 성기 훼손 장면과 과도한 신체 노출에 충격을 받아서라는 설명이 붙은 보도였다.
설마, 했다. 칸영화제는 전문가들과 관계자들을 위한 자리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나 기자, 영화사 임직원, 감독, 배우 등이 객석을 거의 차지한다. 잔혹한 영화에도 이골이 난 ‘선수’들일 텐데 실신이나니. 과장 보도가 분명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영화는 충격적이긴 했다. 한국에서는 수위를 낮춘 일명 ‘소프트 버전’이 상영됐다. ‘안티크라이스트’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자신의 예술적 욕망을 칸영화제라는 스크린을 통해 배출하며 소수지만 여러 사람들과 소통했다. 그러면서도 개봉 할 때는 나름 보통 관객들과의 만남을 위해 융통성을 발휘했다.
어느 영화제나 자극적인 영화들로 가득하다. 극장 개봉작들과 달리 심의나 등급 분류라는 장애물이 없으니 표현의 자유가 충만하다. 선정성을 무기로 한 상업적인 의도가 있을 수 있으나 영화제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은 그에 비할 수 없다.
7일 막을 내리는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도 파격적인 작품이 여럿 있다. 에로티시즘을 내세운 프랑스 영화 ‘러브’는 호사가들의 눈길을 끌만하다. 남녀의 실제 정사 장면이 수시로 등장하는데 3D로 상영됐다. 외설이라는 딱지가 붙고, 제대로 개봉되지도 못할 3D 영화이지만 영화제라는 축제를 통해 관객들과 작은 소통의 자리를 마련했다. ‘러브’는 국내 개봉 때는 2D로만 상영될 예정이다.
국정원의 가짜 간첩 만들기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자백’과 해직 언론인 문제를 묘사한 다큐멘터리 ‘7년-그들이 없는 언론’도 전주영화제의 화제작들이다. 금기에 도전하는 영화는 아니나 사회 문제를 넓게 조망하며 깊이 있게 파고든다. 극장들의 환대를 받기 어려운 정부 비판적 영화들인데 영화제를 발판 삼아 존재를 알리고, 더 많은 관객과의 만남을 도모한다. 영화제의 또 다른 순기능이다.
어느 영화든 상영할 수 있는 게 영화제의 기본 상식.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제 상식도 통하지 않나 보다. 지난달 30일 ‘자백’ 상영 뒤 한 관객이 김영진 전주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에게 던진 질문은 씁쓸했다. “‘자백’을 초청해서 내년 전주영화제도 부산영화제처럼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 아닌가요.” 우려에서 나온 말이었으나 국내에서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위협받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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