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민주화보상위 16년… 9700명에게 ‘햇빛’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민주화보상위 16년… 9700명에게 ‘햇빛’

입력
2016.05.04 04:40
0 0

국무총리실 산하 독립기구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ㆍ보상

심의 기준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

노동운동 해직자 등도 피해자 포함

전과기록 삭제ㆍ복직 등 후속 절차

법적 강제력 없어 지지부진

1989년 5월 대구의 한 여고 2학년생이었던 김수경양은 담임선생님이 전국교직원노조에 가입해 활동했다는 이유로 해직되자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시험을 거부하고 농성을 주도했다. 이후 괘씸죄에 걸린 김양은 체벌 등 학교 측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해 90년 6월 5일 영남대 4층 인문관에서 투신했다. 17세의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한 김양의 의로운 죽음은 2004년 3월 16일에야 정부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2000년 1월 출범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민주화보상위)’가 3일 16년 동안의 활동 기록을 담은 ‘민주화운동백서’(총5권)를 펴냈다. 민주화보상위는 민주화보상법을 근거로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희생된 사람과 유족들에게 국가가 예우를 해주자는 취지로 국무총리실 산하에 만들어진 독립기구다. 위원회는 64년 3월 24일 이후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해 숨지거나 다치고, 또 법적 처벌을 받는 등 피해를 입은 민간인을 상대로 신청을 받아 왔다. 그렇게 16년간 접수된 사건만 1만3,369건, 대상자는 1만2,036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수십년 음지에서 숨죽여 살아야 했던 9,713명(명예회복 8,887건, 보상 826건)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는 결실도 봤다.

14세 노동자부터 70세 노인까지… 해외 탄압 사례도

위원회에 접수된 명예회복ㆍ보상 신청인의 연령대는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백서에 따르면 전체 신청자 중 20대(65%), 30대(19%)가 가장 많았지만 10대 학생들도 5%(641명)를 차지할 정도로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특히 70년대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일찌감치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 자본에 유린당했던 어린 노동자들의 민주화운동 기록이 생생히 담겨 있다. 75년 불과 14세 나이에 서울 청계천 동화시장 미싱사로 일하던 중 노조를 결정했다는 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김선주씨, 77년 청계피복노조를 탄압하는 경찰에 맞섰다가 유죄 판결을 받은 임미경씨(당시 15세) 등이 30여년 후인 2009년, 2010년 각각 명예가 회복됐다.

해외 민주화운동 관련 신청이 34건이나 접수된 점도 눈에 띈다. 재미동포 박병태씨는 85년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연합’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워싱턴 주미한국대사관 앞에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방미 규탄집회를 주도했다가 미국 경찰에게 폭행을 당했다. 위원회는 심의 끝에 박씨의 보상 신청을 받아들였다. 위원회 송병헌 대표전문위원은 “백서는 이미 이름이 잘 알려진 민주화열사뿐 아니라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폭력 앞에 신음했던 민초들의 희생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다”며 “민주화운동 연구를 위한 살아있는 기록물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강제력 없는 민주화보상위 ‘권고’는 한계

위원회는 민주화운동 항거 대상을 권위주의 ‘정권’이 아닌 ‘통치’로 규정했다. 심의 범위를 넓혀 더 많은 피해자를 구제하자는 취지였다. 덕분에 보상 인정을 받은 773명에게 427억원의 보상금이 지급됐다. 명예회복 인정 대상 중 해직자와 유죄 판결에 따른 구금 경력자 등 4,167명도 생활지원금 718억원을 수령할 수 있었다.

금전적 보상은 분명 성과였지만 명예회복 후속 조치는 한계도 있었다. 위원회는 명예회복 인정 결정이 난 신청자를 대상으로 ‘전과기록삭제 요구’ ‘학사징계자 징계기록 말소’ ‘해직자 중 복직희망자 복직 권고’ 등의 행정 절차를 추진하고 있지만 법적 강제력이 없어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달 25일 서울 양화대교 철탑 위에 올라가 복직 농성을 했던 김정근(60)씨가 단적인 사례다. 김씨는 85년 서울 구로구 부산파이프(현 세아제강) 노동자로 근무할 당시 근로조건 개선과 노동3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주도하다 해직당했다. 위원회는 2009년 김씨의 명예회복 신청을 인정하고 회사에 복직을 권고했으나 사측은 “경영 실적이 악화됐다”며 여태껏 재고용을 거부하고 있다.

아직 인정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많지만 2007년 5차 명예회복ㆍ보상 신청을 마지막으로 위원회 접수가 끝난 것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위원회는 현재 신청사건에 대한 심의를 거의 마무리하고 활동 종료를 앞두고 있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은 물론 지금도 민주화는 진행 중”이라며 “민주화보상법이 아우르지 못한 피해자가 존재하는 만큼 법 개정 등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