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서 언니 어렸을 때 생일파티 했었잖아!” 크루즈 여객선 아도니아호가 쿠바 아바나 항구로 서서히 다가서자 갑판 위의 베아트리스 멜렌데스(52ㆍ여)가 곁에 있던 언니에게 갑자기 소리쳤다. 4살 때 가족과 망명을 떠나 어느덧 50대 중년이 된 멜렌데스는 48년 만에 고향 땅을 밟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자매는 “마이애미를 출항할 때 무지개가 드리웠다”며 “고향을 그리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여행을 축복하며 함께해주신 것 같았다”고 감격을 전했다.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처음으로 미국 선박이 아바나 항에 닻을 내린 2일 항구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세계 최대 여객선 업체인 카니발사의 아도니아호가 승객 704명을 태우고 아바나에 다가서자 수백명의 아바나 시민들이 휘파람을 날리며 환호했다. 항구 앞 산 프란시스코 광장에는 살사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무용수들이 몰려들어 즉석 공연을 펼쳤다. 쿠바 국기와 미국 성조기가 뒤섞여 휘날리는 가운데 아도니아호는 3시간에 걸쳐 항구 서변의 시에라 마에스트라 터미널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바나 항에 가장 먼저 발을 내디딘 승객은 쿠바계 미국인이자 카니발사의 법무 자문의원인 아르날도 페레스였다. 쿠바 관리들과 포옹을 나눈 그는 "쿠바계 미국인이 바다를 통해 귀향하는 첫 기회이기 때문에 매우 특별하다"고 말했다. 마중을 나온 아바나 시민 마리아나 멘데스(37ㆍ여)는 “이 짧은 거리를 지나오는 데 57년이 걸렸다”며 “쿠바의 변화와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페레스를 비롯한 쿠바계 미국인 16명이 아도니아호에 승선하기까지는 난관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난해 미국과 쿠바의 수교 재개 후에도 쿠바계 미국인의 여객선 이용을 금지했던 쿠바 정부는 지난달 법정 공방을 앞두고 나서야 승선을 허용했다.
아도니아호는 이후 일주일 간 시엔푸에고스 등 쿠바의 다른 도시들에 정박한 후 마이애미로 돌아가며, 앞으로 2주에 한번씩 운항을 이어갈 예정이다. 카니발사에 이어 10여개 선사가 미국과 쿠바를 오가는 여객선 운항 계획을 밝혔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