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사진전 ‘보이지 않는 가족’이 서울시립미술관과 일우스페이스에 동시에 열리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롤랑 바르트의 영향을 받은 1960년대 이후 작품을, 일우스페이스에는 그가 비판한 ‘인간가족’(1955)전의 사진과 유사한 작품을 전시했다. 특히 일우스페이스 전시의 마지막은 폭탄 투하 장면의 비디오 아트가 장식한다. 다소 조악해 보이지만 ‘롤랑 바르트를 기점으로 과거의 사진은 종말’했음을 시각화하기 위한 회심의 장치다.
‘인간가족’전은 뉴욕근대미술관(MoMA)이 개최한 세계순회전으로 전세계 270여 명의 작가가 ‘인류는 하나’라는 공통의 구호 아래 모였다. 사진은 대체로 행복한 탄생, 연인과의 달콤한 사랑과 결혼, 전쟁의 피폐함과 쓸쓸한 죽음 등을 묘사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처할법한 상황, 느낄 법한 경험이다. 사진 속 인물과 완벽히 감정을 공유할 순 없지만 유사 감정을 느끼는 건 가능하기에 이 사진전은 전세계인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파리에서 이 전시를 본 롤랑 바르트는 경악했다. 상상적 공동체나 다름없는 ‘인류’를 주제로 내건 것도 모자라 개별인간을 전형적인 사건이나 희로애락 같은 보편적 감정 속에 매몰시킨 탓이다.
그래서 그는 획일성이나 전형성을 거부하며 근대 사회를 지배해왔던 다양한 신화적 요소들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성공한 남자, 아버지 등으로 대변되는 가부장적 요소, 성이나 가족과 같은 굴레가 대상이 됐다. 이와 동시에 롤랑 바르트는 이미 존재해왔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주변적 존재들, 거리의 아이들이나 유랑자, 지적 장애인 등에 주목했다. 이런 롤랑 바르트의 사상은 많은 사진가들의 이정표가 됐다. 특히 그의 저서 ‘카메라 루시다’(1980)는 아직까지도 사진과 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라 불릴 만큼 영향력이 있다.
이번 전시의 기획자는 서울시립미술관을 롤랑 바르트가 ‘만약 살아있었다면’ 좋아했을 사진으로 꾸몄다. 인류라는 허상으로 환원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존재하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신디 셔먼의 ‘무제 67번’(1980) 에서 관객이 ‘여인이 어떤 맥락에 처했는지’를 분명하게 알기란 쉽지 않다. 표정도 포즈도 모호하다. 정지화면처럼 보여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작가는 제목으로 상황을 설명해주는 친절함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안드레스 세라노의‘부다페스트, 어머니와 아들’(1994) 구도는 피에타와 유사하다. 그러나 검게 그을린 살과 푸석한 머리의 어머니, 젖가슴을 물기엔 너무 커버린 아이의 모습이 서사의 성스러움을 개인의 일화로 상쇄시킨다. 서혜임 학예연구사는 “롤랑 바르트가 보편적 인류애를 깨부수며 사진의 존재방식을 180도 뒤바꿨다”고 말했다.
롤랑 바르트가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롤랑 바르트의 존재감을 한 눈에 실감하기엔 현대인이 이미 많은 사진 어법들에 노출되었고 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울시립미술관 작품 몇은 ‘그가 봤다면 욕했을 것’이라며 전시한 일우스페이스의 작품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래서 관객에게 서울시립미술관을 먼저 감상하고 일우스페이스에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맥락이 생략된 현대작품을 감상하다가 잘 자리 잡힌 구도와 분명한 메시지를 접했을 때의 이질감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어 롤랑 바르트의 존재감을 피부로 느끼기엔 더 좋다. 롤랑 바르트 탄생 100주년과 함께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프랑스 국립조형예술센터(CNAP)와 아키텐지역 현대미술기금(FRAC)의 소장품 210여 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29일까지 계속된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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