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바람’이 ‘번개’보다 빨랐다.
지난 2월 일본의 한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색 쇼를 열었다. 초속 8.9m의 강풍기를 뒤에 두고 미국 육상스타 저스틴 게이틀린(34ㆍ미국)이 홀로 100m 레이스를 펼쳤다. 바람의 도움을 받은 게이틀린은 9초45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현존하는 최고의 스프린터 ‘번개’ 우사인 볼트(30ㆍ자메이카)가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에서 세운 9초58의 세계신기록을 0.13초나 단축했다. 물론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기록이다. 정식 대회도 아니고 만약 공식 대회라 해도 육상에서는 남녀 100mㆍ200m 달리기와 여자 100m 허들, 남자 110m 허들에서 뒷바람이 초속 2m 이상이면 기록을 인정하지 않는다. 세단뛰기, 멀리뛰기, 포환던지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해머던지기에도 같은 규정을 적용한다.
#사례2
한국 남자 멀리뛰기의 간판 김덕현(31ㆍ광주시청)도 너무 세게 분 뒷바람에 때문에 땅을 쳤다. 그는 1일 경북 문경에서 열린 전국종별육상경기선수권 남자 일반부 멀리뛰기 6차 시기에서 8m23을 뛰어 정상에 올랐다. 대회 4연패다. 자신의 최고기록(8m20ㆍ2009년 베오그라드 유니버시아드)도 깼다. 이는 올 시즌 세계랭킹 5위권에 해당하며 2012 런던올림픽 은메달(호주의 미첼 와트ㆍ8m16)을 능가하는 기록이다. 리우올림픽 기준기록(8m15)도 가볍게 넘었다. 하지만 뒷바람이 초속 2.9m라 역시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김덕현은 다음 달 종합선수권에서 다시 리우올림픽 티켓에 도전한다. 그는 주종목인 세단뛰기는 이미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두 사례는 뒷바람이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이 꽤 크다는 걸 보여준다. 스포츠 과학에서는 육상 100m의 경우 뒷바람이 초속 2m일 때 남자의 경우 0.161초 도움을 받는 것으로 본다. 초속 2.5m에서는 0.195초, 3m에서는 0.228 초 이득을 본다.
하지만 멀리뛰기는 단거리 육상처럼 기록 단축 효과를 수치화하기 쉽지 않다. 멀리뛰기는 도움닫기와 발구름, 공중 비행동작, 착지의 네 단계로 이뤄진다. 한국스포츠개발원 성봉주 박사는 “멀리뛰기의 도움닫기 거리는 35~40m다. 도움닫기 전 속도도 물론 중요하다. 100m 주력 선수들이 멀리뛰기에서 종종 좋은 기록을 내는 비결도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수평 속도를 공중으로 잘 띄워 효율적인 공중 동작과 착지로 연결하느냐가 더 관건이다”고 덧붙였다. 뒷바람이 분명 기록 향상에 도움은 되지만 공중 동작과 착지의 기술적인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런 변수를 감안하면 뒷바람으로 인한 추정 기록을 산출하기가 어렵다.
김덕현을 통해 유추해볼 수는 있다. 박영준 육상 국가대표 코치는 “김덕현이 최근 실전에서 7m89, 8m01, 8m02를 뛰었다”고 설명했다. 김덕현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7m90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땄다. 박 코치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8m를 못 넘었는데 요즘 꾸준히 8m 이상을 뛰고 있어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즉 최근 8m를 넘나드는 페이스를 보이던 김덕현이 뒷바람을 타고 이번에 평소보다 약 20cm 더 멀리 도약한 셈이다.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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