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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핑크택스’에 반대한다

입력
2016.05.0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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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을 좋아하세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처럼 뜬금없지만, 요즘 인터넷에서 핑크가 뜨겁다. 해외에서는 분개한 여성들이 일제히 ‘핑크택스’라는 해시태그(#pinktax)를 달고 소셜네트워크를 달궜다. ‘핑크택스’란 여성용 물건에 더 비싼 가격이 매겨진 것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불해야 하는 웃돈이라 할 수 있다. 작년 말 뉴욕시 소비자보호국은 24개의 온ㆍ오프라인 소매점에서 판매하는 800개 제품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여성용이 비싼 제품이 42%, 가격이 같은 것은 40%, 남성용이 비싼 제품은 18%뿐이었다. 이어 영국 언론들도 제조업체, 성능과 규격이 같은 제품을 조사한 결과를 보도했다. 무려 여성용 제품이 남성용보다 최대 2배까지 비싸게 팔렸다. 여성용과 남성용의 차이는 핑크색과 파란색 포장뿐이었다. 아니, 핑크색 염료가 언제부터 그렇게 비쌌더라.

뉴욕시 연구에서 가장 가격 차가 큰 품목은 샴푸나 컨디셔너, 데오도란트, 면도기 등의 미용용품으로, 여성용이 남성용보다 평균 13% 더 비쌌다. 의류의 경우 여성들은 동일한 제품에 평균 8%의 웃돈을 낸다. 심지어 생로랑 발렌티노 구찌 발망 등 명품의 경우 같은 라인, 같은 디자인의 여성용 의류가 최대 114만원 더 비쌌다. 분홍색 여아용 장난감 가격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실태가 궁금해진 나는 대형마트에서 핑크로 도배한 제품을 훑고 다녔다. 마침 주류 코너에서 ‘핑크이슬’이라는 신제품 행사 중이었는데, 6개 세트에 8,100원인 반면 같은 회사, 동일한 용량의 맥주는 7,660원이었다. 생활용품의 경우에도 분홍색 후로랄 락스는 파란색 일반 락스보다 더 비쌌다. 그래도 이런 경우에는 알코올 도수가 낮거나 향이 첨가되는 등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유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대형마트 PB상품 면도기의 경우 여성용은 500원인 반면 남성용은 199원이었다. 로보카 폴리가 그려진 파란색 킥보드는 45,900원, 헬로 키티가 그려진 핑크색 킥보드는 55,900원이었다. 한 속옷 브랜드의 면 러닝 3개 세트의 경우 여성용은 9,990원인데 남성용은 8,990원이었다.

주변에 말했더니 뭔가 기능이 다르거나 여성용이라 더 섬세한 거 아니냐고 했다. 최대한 동일한 제품을 선택했지만 나조차도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여자들 바디라인은 더 굴곡지고 피부는 민감해서 그럴 거야, 이런 의심들. 아마 ‘핑크택스’를 몰랐다면 스스로를 ‘사사건건 트집 잡는 까칠한 여성주의자’라고 탓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들 수염이 여자들 체모보다 더 억세고 사이즈가 큰 남성용 의류에는 원단값이 더 많이 드니 남성용 제품이 더 비쌀 이유도 얼마든지 많다. 한 마케팅 전문가는 여성이 외모나 생활용품 관련 제품에 돈을 더 지불하리라는 전략 아래 가격이 높게 정해진다고 말한다. 캘리포니아 주는 1996년 미국 최초로 성에 따른 가격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고, ‘핑크택스’에 항의하자 영국의 생활용품 매장 ‘부츠(Boots)’는 일부 품목의 가격을 조정했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가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2년부터 부동의 1위고, 수치가 워낙 독보적이라 한동안 계속 일등을 먹을 기세다.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65만원을 받는다. 여자라서 임금은 적게 주면서 고작 핑크로 칠해놓고 물건값은 더 내라고? 해도 해도 너무한다. 백악관에는 여자, 남자, 장애인,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이 맘 편히 사용하도록 젠더 중립 화장실이 생겼다. 화장실 구분도 사라지는 마당에 여성용ㆍ남성용 물건이 뭐 대순가. 분홍색을 좋아하는 아저씨, 페미니스트, 동성애자, 트렌스젠더 모두 물건 본연의 기능과 취향에 따라 골라 쓸 수 있는 성 중립적인 물건을 꿈꾼다. 것도 웃돈 없이!

고금숙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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