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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코끼리 ‘삼보’의 죽음

입력
2016.05.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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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좋은 동물을 꼽으라면 물에서는 돌고래요, 뭍에서는 코끼리다. 코끼리는 덩치가 커 어쩐지 둔할 것 같지만 기쁘고 슬픈 감정을 표출할 뿐 아니라 수십 년 전 만났던 친구 코끼리와 사람도 기억한다고 한다. 미국 공화당이 코끼리를 자기 정당의 상징 동물로 삼은 것은 녀석들이 점잖고 위엄이 있는 데다 이렇듯 머리까지 좋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여럿이 함께 생활하는데, 가장 나이 많은 암컷이 무리를 이끈다. 같은 집단의 코끼리들은 특유의 모성애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는 암컷 리더를 중심으로 유대감을 갖고 있다.

▦ 동남아 등지의 코끼리 사냥은 어미에게서 새끼를 떼놓거나 심지어 어미를 살해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어미와 떨어진 새끼를 틀 안에 넣어 일주일 정도 칼 또는 꼬챙이로 찌르고 몽둥이로 때린다. 만신창이가 된 새끼 코끼리는 공포에 휩싸인다. 관광 산업에 이용되는 코끼리 중 상당수는 이렇게 길들여진다. 코끼리는 사람을 태우고 나무 의자까지 져야 하기 때문에 퇴행성 관절을 앓거나 발이 아픈 경우가 많다. 가이드는 트레킹에 나선 코끼리를 이끌기 위해 쇠꼬챙이로 머리를 피가 나도록 내려치기도 한다.

▦ 며칠 전 캄보디아에서 코끼리 한 마리가 쓰러진 사진이 외신에 보도됐다. 40도의 더운 날씨에 앙코르와트 유적지로 관광객을 태우고 갔다 돌아오던 중 탈진해 숨진 삼보라는 암컷이다. 삼보는 나이가 마흔 살에서 마흔 다섯 살쯤으로 고령에 해당한다. 늙어서 기력이 떨어졌지만 그날도 사람을 태우고 45분 동안 2.1㎞를 걸은 뒤 일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육중한 제 몸과, 사람의 무게를 견디느라 힘들었을 녀석의 발바닥이 사진 속에 큼지막하게 드러나있다. 삼보는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노예처럼 일하다 죽음을 맞았다.

▦ 한국에서는 돌고래 제돌이, 태산이, 복순이가 공연업체로 넘겨졌다가 바다로 돌아갔다. 인간의 돈벌이에 내몰려 죽을 뻔하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녀석들이 얼마 전 씩씩하게 헤엄치는 모습이 관찰됐다. 삼보의 죽음을 계기로 코끼리 관광 폐지 청원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코끼리로 돈을 벌어온 인간들이 응할지는 알 수 없다. 사람도 살아가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공공이 생계를 책임질 수 있겠지만 아직은 그런 일이 없다. 삼보처럼 누군가 목숨을 잃을 정도로 일해야 유지되는 경제의 비정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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