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인 핵심부서 직접 관리하며
문제 생기자 “독립된 회사” 발뺌
과거 론스타 수사가 모델될 수도
“국내 수사에 그쳐선 안돼” 여론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업체 책임 규명으로 치달으며 살균제 제조ㆍ판매업체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영국 본사도 수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다국적기업 레킷벤키저가 2001년 3월 옥시의 생활용품 사업부를 인수ㆍ합병해 만든 옥시레킷벤키저는 지금까지 “한국 법인은 법적으로 독립된 회사로, 영국 본사는 제조ㆍ판매에 책임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이 올해 본격 수사에 착수한 이후 옥시가 제품의 유해성 관련 증거를 없애거나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을 왜곡ㆍ선별해 검찰에 제출한 과정에 본사가 개입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옥시가 레킷벤키저에 인수되기 전 1995~96년 ‘프리벤톨R80’ 물질을 사용해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했을 때는 독일 교수의 조언을 받아 흡입 독성실험을 실시했지만 이후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으로 원료를 교체할 때는 같은 실험을 하지 않은 데 대해 영국 본사의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 또 수사과정에서 영국의 유명 폐질환 전문병원의 임상분석보고서를 토대로 유리한 증거를 검찰에 제출하거나, 2011년 한국 법인을 유한회사로 변경한 과정에 상식적으로 본사가 개입하지 않았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옥시는 한국법인 대표를 비롯해 마케팅 등 핵심부서에 본사가 직접 외국인 직원들을 임명해 사실상 경영을 좌지우지한다.
외국 현지 기업을 수사하는 길은 길고도 험하다. 일단 영국 본사 관계자들을 강제로 국내에 소환할 길이 없다. 국가 간 공조를 통해 영국 사법기관이 수사하도록 하기는 가능성이 낮고 수사한다 하더라도 오랜 기간이 걸린다. 만약 검찰이 영국 본사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다면 과거 대검 중수부의 론스타 수사를 모델로 삼을 수 있다. 검찰은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미국계 사모펀드 회사 론스타의 존 그레이켄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국내 소환했다. 당시 그레이켄 회장은 “떳떳하다”며 입국했고, 검찰은 그를 출국정지 조치했다. 옥시 본사에 대해서도 “잘못이 없다면 조사를 받아라”고 압박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옥시가 검찰의 요구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또한 소환한 본사 관계자를 출국정지시키려면 혐의가 어느 정도 입증된 상태여야 한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러한 난항을 예상하더라도 “검찰이 쉬운 길로 가지 말고, 이번만큼은 어려운 길로 갔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희생양을 찾기 쉽고 처벌이 용이한 국내법인 수사에 그칠 게 아니라 다소 시간이 걸리고 어렵더라도 유독물질을 판매한 최종 책임자를 가리는 것이 약자와 국민을 위한 수사라는 검찰의 본분을 다한 것이라는 뜻이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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