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에게는 달갑지 않을 엇비슷한 포맷의 가요 예능프로그램이 가수들에게는 ‘경력 심폐소생’의 극적인 계기가 되기도 한다. 폭발력 있는 가창력을 지녔지만, 히트곡이 없어 빛을 보지 못한 가수들을 재발견하는 무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할 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아는 곡을 통해 가창력을 뽐내면 감동은 배가 된다. ‘흙 속에 묻혔던’ 가수들은 자신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시청자에 각인시켜 빛을 보게 된다.
음악 예능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가수가 황치열(34)이다. 데뷔 후 약 9년 동안 무명처럼 살았던 그는 중국 후난위성 TV ‘나는 가수다 시즌4’에 출연해 한류스타로 떠올랐다.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그룹 빅뱅의 ‘뱅뱅뱅’ 등을 멋지게 소화해 현지 시청자를 사로 잡았다. 지난 1월15일 중국판 ‘나는 가수다’에 처음 출연한 그는 지난 8일 끝난 가왕전 무대까지 85일 간의 현지 여정만으로 대륙에서 ‘벼락 스타’가 됐다. 29일 중국에서 일하고 있는 여러 방송관계자들에 따르면 황치열의 현지 행사비는 1건 당 1억원을 훌쩍 뛰어 넘는다. 인지도가 없어 중국에서도 찾지 않았던 국내 가수가 불과 석 달 만에 행사비로 1~2억 원을 받는 ‘A급 스타’ 반열에 올랐다.
황치열 측은 “‘나는 가수다’ 출연 전엔 공항에 한 명의 팬이 왔는데, 방송이 나간 뒤부터는 현지 숙소에 수 백명이 몰려 녹화장에 갈 때마다 놀랐다”고 말했다. 중국에서의 인기 덕에 그는 최근 롯데면세점 모델까지 꿰찼다. 배우 김수현과 이민호, 보이그룹 엑소 한류 스타들이 맡았던 광고다. 2007년 1집 ‘오감’을 낸 뒤 반응이 없어 10년 가까이 국내에서 2집을 내지 못하고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생계를 이어오던 가수의 인생 역전이다. 중국판 ‘나는 가수다’ 제작진은 지난해 황치열이 KBS2 노래 경연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서 보여준 강렬한 무대를 보고 반해 그를 섭외했다.
국내에선 밴드 국카스텐 멤버인 하현우가 가장 ‘핫’한 음악 예능 스타로 떠올랐다. 거친 기타 연주를 바탕으로 록음악을 하는 밴드가 대중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건 MBC 노래 경연 프로그램 ‘복면가왕’ 때문이다. 7주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하며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동네 음악대장’(프로그램 내 가명)의 주인공으로 하현우가 매우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날카롭게 쏘아 붙이는 특유의 고음으로 첫 우승 때부터 ‘우리 동네 음악대장’은 하현우라는 추측이 나왔고, 방송이 거듭될수록 추측은 확신으로 변하는 분위기다. 하현우가 속한 국카스텐은 6월부터 시작할 전국투어 공연에서 ‘복면가왕’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2,000석 규모의 서울 공연 티켓은 예매로 이미 매진됐다. ‘우리동네 음악대장’으로 여겨지는 가수가 가면을 벗고 무대에 선 모습을 직접 눈 앞에서 보고 싶은 이들이 몰린 것이다. 한 공연관계자는 “국카스텐이 홍대에선 스타밴드이지만 비주류 음악 장르 특성상 1,000석 규모의 공연장 정도만 채울 수 있는 밴드”라며 “그런 밴드가 1만 석 규모의 5개 도시 전국 투어를 기획했다는 건 ‘복면가왕’ 등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가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봤다.
2009년 데뷔한 알리(32)도 2014년 KBS2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하면서 5년 만에 빛을 봤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탱고 풍으로 부르고, 패티 김의 ‘가시나무새’를 대북 연주와 함께 전위적인 무대로 꾸리는 등 다양한 무대로 가수로서의 숨겨진 재능을 마음껏 발산해 주목 받았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고음과 저음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무대를 화려하게 꾸려 ‘젊은 디바’ 반열에 올랐다. 그가 2008년 8월2일 방송에서 조영남의 ‘내 생에 단 한 번만’을 불러 기록한 점수(447점·500점 만점)는 4년 동안 깨지지 않고 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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