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최고의 덕목은 우승트로피가 아니라 ‘에티켓’이다.
영국골프협회와 대한골프협회 모두 골프규칙 제1장 제1절은 에티켓에 관한 것으로 “플레이어가 스트로크를 할 때에는 주변에서 떠들거나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이어지는 규칙 역시 대부분이 에티켓과 관련된 것이다. 일반적인 룰 자체가 예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도 별도로 ‘코스에서의 예의’라는 장을 두어 다시 한 번 골프예의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골프가 어떤 게임이며 어떤 게임이어야 하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최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골프 예의’에 어긋나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 지난 17일 박성현(23ㆍ넵스)이 연장 승부 끝에 시즌 2승을 차지하며 막을 내린 KLPGA 투어 삼천리 투게더 오픈 당시 박성현은 김지영(20ㆍ올포유)과 연장전에서 맞붙었다. 박성현이 탭인 거리의 짧은 파 퍼트를 남겨둔 상황에서 김지영이 시도한 2m짜리 파 퍼트가 홀을 벗어나자 갤러리들 사이에서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일부 ‘극렬’ 박성현 팬들의 행동에 상당수 박성현 팬들마저 눈살을 찌푸려야만 했다. 특히 올 시즌 처음으로 KLPGA 1군 무대를 밟은 김지영은 눈앞에서 놓친 우승 트로피 못지 않게 자신의 실수에 쏟아진 박수가 크나큰 상처가 됐을 것이다.
김해 가야CC에서 열린 넥센ㆍ세인트나인 마스터즈 경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시즌 3승을 노리는 박성현은 18번홀에서 1타차로 김민선(21ㆍCJ오쇼핑)에 앞서 있었지만 3m짜리 쉽지 않은 파퍼트를 남겨두고 있었다. 김민선이 버디를 낚는다면 순위가 뒤바뀔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김민선의 6m 거리의 버디퍼팅이 홀을 살짝 벗어나자 일부 팬들로부터 어김없이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앞선 17번 홀에서는 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2타차 선두를 달리던 박성현이 17번홀(파3)에서 티샷을 해저드에 빠뜨리자 김민선 팬들은 주먹을 불끈 쥐어 들어 보이며 환호했다.
하지만 이 같은 볼썽사나운 장면은 박성현과 김민선 팬들만의 어긋난 행동이 아니다. 최근 이들이 우승을 놓고 박빙의 승부를 벌여 부각된 것일 뿐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를 가장 중요시하는 골프 경기에서 추방해야 할 추태가 모든 경기 중에 속출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코스 설립자인 로버트 트렌트 존스는 1949년 관람객 가이드를 발표하면서 골프 규칙만큼이나 갤러리의 에티켓이 중요하다고 못 박았다. 그는 특히 선수들이 실수했을 때 박수를 치면서 좋아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해마다 갤러리에게 나눠주는 가이드북의 첫 장에는 매너가 좋지 않은 갤러리는 즉시 퇴장시킨다는 문구가 들어 있을 정도다.
KLPGA가 인기를 끌면서 선수들마다 각자의 팬클럽이 자발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일부 선수의 경우 팬클럽 회원수가 수천명에 달한다. 하지만 팬클럽 규모가 커지면서 경기 결과에만 집착하는 팬 문화가 나타나고 있다.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들의 우승을 열망하는 만큼 이제 팬으로서 지켜야 할 에티켓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것이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를 가장 아끼는 방법일 것이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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