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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과리지혐(瓜李之嫌)

입력
2016.04.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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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건조된 선박의 이름을 지어 탄생을 알리고 무사 운항을 기원하는 행사를 선박 명명식이라 한다. 명명식에서는 선박을 발주한 선주 측과 관련이 있는 여성이 배의 이름을 짓고 외치는 것이 관행이다. 이 여성은 선박의 대모(godmother), 혹은 후원자(sponsor)라고 불리며 선주 부인이나 딸 등이 주로 맡는다. 때로는 유명 여성 인사, 조선소의 노조위원장 부인, 여직원 등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희호,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부인들도 대부분 후원자로 나선 경험이 있다.

▦ 후원자를 여성이 맡는 것은 해적으로 유명한 중세 북유럽 바이킹 족 전통과 천주교의 세례식 풍습이 어우러진 결과다. 바이킹 족은 새로 건조한 배를 바다로 띄우기 전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가졌다. 그래야 신이 보살펴준다고 믿었다. 이후 천주교의 세례식이 가미됐다. 세례식에서 남자아이는 남자가, 여자아이는 여자가 각각 대부모 역할을 맡는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우리 노랫말과는 달리 영어의 배(ship)는 여성(she)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여성이 배의 대모로 굳어졌다.

▦ 명명식에는 도끼가 등장한다. 선박과 연결된 밧줄을 도끼로 끊는 것이 행사의 절정이다. 아기가 태어날 때 탯줄을 자르는 것 흉내를 냈다. 이 역시 바이킹 족이 새로 건조한 배를 해안에서 바다로 내려 보낼 때 배를 묶었던 밧줄을 도끼로 끊었던 전통에서 왔다. 그래서 선박의 대모를 ‘도끼 부인’ ‘도끼녀’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명명식에 사용된 도끼는 대모가 보관한다.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명명식 도끼를 소유한 인물이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으로 40개가 넘는다.

▦ 최 회장이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22일) 직전에 보유주식을 전량 매각하면서 곤경에 빠졌다. 최 회장과 자녀들은 6~20일 한진해운 주식 97만 주를 27억 원 가량에 매각했다. 이 때문에 10억 원 정도의 손실을 회피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손실회피금액이 5억 원을 넘으면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6일 매각을 시작한 게 ‘오비이락(烏飛梨落)’일지도 모르지만, ‘과리지혐(瓜李之嫌)’을 잊었음은 분명하다. 외밭이나 오얏나무 아래서는 오해를 살 행동은 삼가야 한다는.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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