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령’의 작가 이순원이 6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삿포로의 여인’(중앙북스)으로 돌아왔다. 눈의 고장 삿포로, 그리고 작가의 영원한 소설적 고향 대관령을 무대로 봄눈 같은 사랑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소설은 신문기자 박주호가 중학교 시절 연희를 처음 만났던 날의 기억으로 시작된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던 유강표와 이국적인 분위기의 일본 여자 시라키 레이, 그리고 풍선을 손에 들고 유강표를 “아빠”라 부르던 연희. 국가대표 스키선수였던 유강표는 주목 받지 못하고 선수생명을 마감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를 따라 한국으로 온 아내 시라키 레이는 딸 연희를 할머니의 손에 맡기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관령에서 머물던 박주호는 옷가게에서 일하던 연희와 재회하고, 두 사람은 대관령에 내리는 눈처럼 하나 둘 추억을 쌓아간다. 시간이 흐른 후 대관령을 떠나 삿포로로 간 연희가 보낸 편지에는 흩날리는 첫눈 같은 고백이 담겨 있다. “이 나무가 새하얀 꽃을 피울 때쯤 당신을 한 번 더 만날 수 있을까요?”
이순원은 작가의 말에서 대관령과 삿포로라는 양국의 대표적인 ‘눈의 고장’을 배경으로 운명적이면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려 안타까운 사랑을 그리고자 했다고 밝혔다. “삿포로에서 태어나 대관령에 와서 사는 여자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대관령에서 태어나 삿포로에 가서 사는 여자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사랑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그들의 겨울눈 같은 사랑과 봄눈 같은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대관령과 삿포로에 내리는, 겨울눈처럼 운명적이고 봄눈처럼 쉽게 녹아버리는 사랑이 은근하고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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