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선박용 안전용품을 제작해 대우조선해양과 한진해운 등에 납품하고 있는 A사의 B(56)대표는 최근 밤잠을 못 이룬다. 조선업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가장 먼저 피눈물을 흘리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A사의 매출은 2014년 250억원에서 지난해 120억원으로 반토막이 난 상태다. B대표는 “270여명이었던 임직원 중 이미 70여명을 정리했다”며 “대기업이 ‘구조조정 밀어내기’를 할 경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인력을 줄여야 할 지 암담하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에 대한 추가 구조조정을 압박하며 엉뚱하게 중소 협력업체들과 중소 조선소가 신음하고 있다. 이들은 빅3가 구조조정 부담을 사실상 중소 납품ㆍ협력업체들에게 전가시킬 가능성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인력 감축도 납품ㆍ협력업체 근로자들이 가장 먼저 대상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조선 ‘빅3’의 중소 기자재 납품ㆍ협력업체는 현대중공업 300개사, 대우조선해양 187개사, 삼성중공업 151개사 등 모두 638개사에 달한다. 특히 전체 조선업종 종사자 15만6,000여명의 60%인 8만9,000여명이 중소 기자재 납품ㆍ협력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납품 단가 인하 압력은 이미 전례 없는 수준이다. 부산의 조선기자재 제조업체 C사 관계자는 “빅3 조선소의 납품 단가 인하 요구는 매년 있었지만 올해는 새로운 방식까지 동원되고 있다”며 “가령 기자재 업체인 D사, E사, F사에 배분하던 물량을 D사 한 곳으로 몰아주며 납품 단가를 추가로 인하하란 식의 압력까지 가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형 조선소는 납품업체들의 이익률도 손바닥 보듯 파악하고 있다”며 “이런 ‘갑’의 요구를 ‘을’이 거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대형 조선소와 상관없는 중소형 조선사에도 구조조정의 불똥이 튀고 있다. 경남 거제에서 소형 조선사를 운영하고 있는 G(61)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발주사(선주)와 협의를 진행해 온 벙커선 1척(90억~100억원) 수주를 눈 앞에서 놓쳤다. 그는 지난 2월 선주가 요구한 사양에 맞춰 설계도를 만들어 가계약까지 맺었다. 그러나 선주에게서 원자재 구매 등에 필요한 자금(선급금)을 받을 때 필요한 은행의 선급금 보증서를 받을 수 없었다. 조선 경기가 어려우니 은행이 발급을 꺼린 것이다. G대표는 몇 번이나 은행을 찾아가 호소했지만 은행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는 결국 선박 수주에 실패했다. 선주는 국내 조선소가 아닌 일본 업체와 접촉중이다. G 대표는 “2009년 회사를 설립해 매년 2,3척씩 선박을 수주해 건조했는데도 은행이 조선업이 어렵다는 얘기만 듣고 보증서를 발급하지 않아 손님을 외국에 빼앗겼다”고 안타까워했다. 중소형 조선사 70여개사가 가입한 한국조선공업협동조합 관계자도 “중소형 조선사가 엉뚱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대형 조선사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납품ㆍ협력업체들은 정부에 피해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7일 “구조조정 관련 대기업과 협력 관계에 있는 중소기업들이 납품 대금을 제대로 못 받으며 연쇄 도산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대기업의 부실경영 책임이 협력 중소기업으로 전이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중앙회는 대안으로 ▦협력업체 미지급 대금과 근로자 노임채무 우선 변제 ▦고용유지지원금 협력업체 우선 지원 ▦협력 중소기업 영향 평가 등을 제시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