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삶은 늘 호기심의 대상이다. 책상머리 앞에서 낑낑대며 작은 지구를 만드는 일은 고통일까 희열일까. 아니 애초에 왜 그런 일이 하고 싶어지는 걸까. 사람들 앞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이라면 호기심은 더 커진다. 하루키 신작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현대문학)는 35년 간 전업 소설가로 살아온 그가 독자들의 궁금증에 작정하고 내놓은 대답 ‘나 이렇게 소설가가 되었어요’다.
잘 알려졌다시피 젊은 시절 재즈카페 주인이던 하루키는 어쩌다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을까. 때는 1978년 4월, 진구 구장에 야구 경기를 보러 간 그의 앞에서 한 무명 타자가 호쾌한 2루타를 날린다. 그리고 그 순간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는 소설가의 삶을 확신했다고 한다. “그때의 감각을 나는 아직도 확실하게 기억합니다. 하늘에서 뭔가가 하늘하늘 천천히 내려왔고 그것을 두 손으로 멋지게 받아낸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 그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루키를 추종하는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이 말은 실망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야구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원고지와 만년필을 샀고 그걸로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완성, 군조신인상을 타며 실제로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된다.
하루키에게 소설가로서의 삶은 오해와 비방, 왜곡의 연속이었다. 기성 일본 문단과 달라도 너무 달랐던 그의 작풍, 그리고 굳이 해명하지 않겠다는 그의 태도는 산지사방 적을 만들어냈다. 반대편엔 ‘하루키 신드롬’이라 할 만큼 두터운 팬층이 존재했지만 작가의 눈은 아무래도 비난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던 시간에 머물러 온 듯 하다. 그는 자분자분한 말투로, 일본 문단에서 이른바 이단아 취급을 받게 한 독특한 문체의 배경을 설명한다.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쓰려고 했을 때, ‘이건 뭐, 아무것도 쓸 게 없다는 것을 쓰는 수밖에 없겠다’라고 통감했습니다. ‘아무것도 쓸 게 없다’는 점을 거꾸로 무기로 삼아서 그 지점에서부터 소설을 써 내려가는 수 밖에 없겠다, 라고. 그러지 않고서는 앞선 세대의 작가들에게 대항할 수단이 없습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와 문체가 필요합니다.”
첫 소설을 쓴 뒤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소설을 서툰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한정된 어휘는 관용적 표현, 관습적 감정, 관행적 묘사를 깨끗이 휘발시켰고 하루키는 자신만의 언어, 즉 “불필요한 수식을 배제한 ‘뉴트럴한’, 활동성이 뛰어난 문체”를 획득한다. “그걸 일본어에 대한 모독이라고 보는 사람도 개중에는 있을지 모릅니다. 실제로 그런 비판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란 원래 터프한 것입니다.”
작가의 표현을 빌어오자면 하루키는 터프한 작가다. 학생운동으로 뜨거웠던 1960년대를 온 몸으로 통과한 세대답게 본능적으로 체제를 싫어했고, 자신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에도 35년 간 한 번도 방향을 튼 적이 없다. 문학성이 어떻고 사회적 역할이 어떻고 하는 말에 ‘쓰면서 즐거우면 그걸로 됐다’고 일축하는 작가의 태도는 지금 30~40대 청년들 가치관의 기저에 깊숙이 박혀 있다. 관습에 ‘쿨’하고 취향은 세련된, 이 ‘하루키스트’들의 생명력은 2010년대로 넘어오며 어느 정도 유효기간이 다한 듯 보이지만 작가에겐 여전히 귀 기울일 지점들이 많다. 자신과 비슷한 ‘이단’ 작가들을 향해 국내에서 안 되면 외국으로 나가라는 조언이 그 중 하나다. “생각해보면 국내 비평계에서 실컷 두들겨 맞은 것이 해외 진출의 계기가 된 셈이니 오히려 욕을 먹은 게 행운이었다고나 할까요. 어떤 세계에서나 똑같지만, ‘사람 망치는 칭찬 세례’만큼 무서운 것도 없으니까요.”
시종일관 ‘쿨내’(쿨한 냄새)를 풍기던 그는 소설가를 지망하는 이들에겐 제법 따뜻한 초대의 말을 보낸다. 하루키도 나이를 먹은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어느새 그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는 걸까.
“애초에 소설 같은 건 쓰지 않아도(혹은 오히려 쓰지 않는 편이) 인생은 얼마든지 총명하게, 유효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래도 쓰고 싶다,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 라는 사람이 소설을 씁니다. 그리고 또한 지속적으로 소설을 씁니다. 그런 사람을 나는 물론 한 사람의 작가로서 당연히 마음을 활짝 열고 환영합니다. 링에, 어서 오십시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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