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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앉은 꽃잎 따라... 봄날은 간다

입력
2016.04.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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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산책로의 낙엽 모양 배수구 덮개 사이로 수북이 쌓인 벚꽃 잎이 보인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산책로의 낙엽 모양 배수구 덮개 사이로 수북이 쌓인 벚꽃 잎이 보인다.
경기 고양시의 한 아파트 단지 내 벚나무 보호덮개 틈으로 떨어진 벚꽃 잎이 색다른 문양을 만들어 내고 있다.
경기 고양시의 한 아파트 단지 내 벚나무 보호덮개 틈으로 떨어진 벚꽃 잎이 색다른 문양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갈라진 아스팔트와 꽃잎이 만나니 한 폭의 담채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갈라진 아스팔트와 꽃잎이 만나니 한 폭의 담채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콘크리트에 난 홈을 떨어진 벚꽃 잎이 채우고 있다.
콘크리트에 난 홈을 떨어진 벚꽃 잎이 채우고 있다.
경기 고양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 떨어진 벚꽃 잎이 수북이 쌓여 있다.
경기 고양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 떨어진 벚꽃 잎이 수북이 쌓여 있다.
낙화 위의 강아지 산책.
낙화 위의 강아지 산책.

하롱하롱 비처럼

흩뿌리는 봄의 꽃잎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버스커 버스커). 거리에 울려 퍼지는 노래 덕분인지 화려한 꽃 길마다 사람들로 넘쳐난다. 요즘엔 꽃구경 커플을 향한 심술 노래도 인기다. ‘결국 꽃잎은 떨어지지 니네도 떨어져라 몽땅 망해라~~’(십센치). 가수 양희은은 ‘아픈 가슴 빈 자리’에 진 사랑을 하얀 목련으로 표현했고 시인 이형기는 낙화(落花)를 두고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했다. 떨어진 꽃잎에는 다가올 녹음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는 양보의 섭리도 깃들어 있다.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문득 길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은 낙화에 눈길이 머문다.

오는 걸음 가는 발길에 밟히고 치인 꽃잎의 초상이 애잔하다.
오는 걸음 가는 발길에 밟히고 치인 꽃잎의 초상이 애잔하다.

남녘 동백꽃 진 소식에 실려 봄날은 왔다. 곧이어 앞마당 목련 꽃이 활짝, 온 나무를 뒤덮는 것으로 완연한 봄을 증명했다. 좋은 시절도 잠시, 개나리 노란 꽃잎, 분홍 진달래꽃 수줍게 터져 나오면 손바닥만한 목련 꽃잎도 툭툭 떨어진다. 무심한 발걸음에 밟히고 짓이겨진 꽃잎은 애처로운 봄날의 유물이 되어 갔다.

한 잎 두 잎 흘린 듯 떨구어진 개나리 진달래의 존재감은 예전보다 확실히 덜 하다. 화려한 벚꽃 그늘에 가려 계절 속으로 쓸쓸히 빨려 들고 만다. 어느새 격정의 봄이 거리를 뒤덮고 연인들의 웃음꽃 사이로 눈부신 햇볕이 쏟아진다. 벚꽃을 그리도 열망하는 모습을 보면 개화 시기가 빨라지는 게 반드시 기후온난화 때문만은 아닌 듯싶다. 절정인가 했더니 바람에 휘날려 비처럼 흩날리는 꽃잎, 탄성과 환호 속에서 낙화는 축제처럼 이어졌다.

낙화는 환호 속에서

별처럼 내려 앉아…

이제 꽃잎은 자동차 바퀴와 환경미화원의 빗질에 쓸려 바닥에 나뒹군다. 봄이 깊어갈수록 늘어나는 축제의 잔해들은 휑한 바람에 꽃 먼지가 되어 날린다. 그날 밤 봄비는 소리 없이 내렸다. 바쁜 출근길 흙탕물에 짓이겨져 뒹구는 더러운 꽃잎들, 이제 축제는 끝났다. 길바닥을 뒤덮은 꽃잎 조각들에서 그 어떤 감동도 느낄 수 없다. 그렇다면 봄은 여기까지인가.

서울 남산 산책로 시냇물 따라 흘러 온 벚꽃 잎.
서울 남산 산책로 시냇물 따라 흘러 온 벚꽃 잎.
꽃잎이 맨홀 뚜껑 사이 사이에도 내려 앉았다.
꽃잎이 맨홀 뚜껑 사이 사이에도 내려 앉았다.
배수구 덮개에 걸려 있는 목련 꽃잎.
배수구 덮개에 걸려 있는 목련 꽃잎.
벚꽃 잎이 빗물에 휩쓸려 배수구 덮개 주변을 뒤덮고 있다.
벚꽃 잎이 빗물에 휩쓸려 배수구 덮개 주변을 뒤덮고 있다.
배수구 속을 차분히 들여다 보면 봄이 보인다.
배수구 속을 차분히 들여다 보면 봄이 보인다.

그러나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꽃잎 더미에서 아직 잔잔한 화사함을 엿보았다. 한 잎 한 잎 날려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 벚꽃 잎은 한 폭의 담채화를 완성해 냈다. 가로수 아래 철재구조물 사이, 갈라진 콘크리트 바닥, 이 빠진 보도블록 사이에도 차곡차곡 쌓였다. 높은 나무 위에서 보다 더 진한 빛깔로 삭막한 세상의 빈틈을 단단히 메우고 있다. 우리의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형체 없는 꽃잎에도

찬란함 묻어 있어

마구 짓밟혀 향기는커녕 형체조차 없어진 꽃잎에도 아직 봄은 묻어 있다. 빗물에 쓸려가고 시냇물에 떠내려 가는 꽃잎이 처량해도 봄은 봄이다. 배수구에 빠진 꽃잎이 그리 화려한 줄 미처 몰랐다. 흥분은 사라지고 차분한 아름다움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축제는 끝났으나 이별은 아직 이르다. 길 바닥 한 떨기 꽃잎의 자취를 더듬으며 그렇게 봄날은 간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길 위에 떨어진 꽃잎을 따라 걸었다. 애잔한 낙화의 봄이 이어졌다.
길 위에 떨어진 꽃잎을 따라 걸었다. 애잔한 낙화의 봄이 이어졌다.
벚나무에서 떨어진 꽃잎이 보호덮개 위로 떨어져 쌓여 있다.
벚나무에서 떨어진 꽃잎이 보호덮개 위로 떨어져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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