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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스타일링, 어울림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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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스타일링, 어울림의 과학

입력
2016.04.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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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스타일링은 옷으로 타인에게 말을 거는 행위다. 게티이미지뱅크
패션 스타일링은 옷으로 타인에게 말을 거는 행위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타인의 옷차림을 향해 ‘과하다’란 말을 쓸 때가 있다. 모임을 앞두고 미장원에 가서 머리도 하고, 정성껏 옷장에서 옷을 고르고 액세서리까지 심혈을 기울여 선별했건만, ‘과하다’란 평가를 들으면 정말 힘이 빠진다. 옷차림에서 과함을 넘지 않는 ‘어울림’을 만들어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이 ‘어울림’이란 문제에 대해 고대의 철학자들부터 현대의 패션 디자이너에 이르는 많은 이들이 고민을 해왔다. 고대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는 ‘연설가론’에서 이상적 연설가의 모습을 통해 ‘어울림’의 철학을 설명했다. 그의 글에는 패션 스타일링을 위한 좋은 가르침들이 녹아있다. 그는 “완벽한 연설가란 어떤 주제가 주어지든 주제의 내용에 따라, 연설 형식을 어울리게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패션 스타일링도 결국은 타인에게 말을 건네는 의사소통 행위고, 옷차림을 통해 타인을 설득하는 수사학이기에 연설가의 조건은 곧 멋쟁이의 조건이기도 하다. 연설을 통해 감동과 재미를 주고 논증을 해야 하듯, 패션도 이 세 가지 목적을 성취해야 한다.

키케로가 주장하는 ‘어울림’에 해당하는 라틴어가 데코룸(Decorum)이다. 이는 그리스어 ‘prepon’을 번역한 말이다. 이 말은 ‘어떤 목적에 알맞으면서도 아름다운 것’이다. 그에게 어울림이란 대중을 향해 연설을 할 때, 내용과 표현, 사안을 연설을 듣는 이들에 맞추어 조율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특히 어울림의 문제와 관련, 키케로는 연설가는 사안과 인물에 대해 재고 따질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말을 전달하는 목소리의 높낮이, 단어의 연결구성, 문장의 호흡 등을 계산해서 미리 정해 놓은 기준을 불필요한 단어로 넘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이런 연설의 원칙은 옷을 입는 방법에도 많은 영감을 준다. 상/하의 모두 패턴이 들어간 옷을 입을 때, 무늬 크기와 형태를 조정하지 않으면 ‘튀기’만 할 뿐 효과는 반감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의 실루엣과 직물의 촉각적 느낌, 직물과 직물이 서로 맞닿을 때 내는 미세한 소리, 여기에 마지막으로 착장의 방점을 찍기 위해 사용하는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재고 세어보아야 한다. 키케로는 화장한 여인의 모습을 예로 들어 “어울리게 화장을 한 여인이 치장을 전혀 안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렇게 엄밀한 연설은 비록 전혀 치장을 안 했음에도 즐거움을 준다. 분가루와 빛나게 보이도록 하는, 붉게 만들어주는 모든 것은 제거될 것이고, 오로지 우아함과 청아함만이 남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키케로가 말하는 엄밀한 연설은 패션으로 보면 전문직을 위한 패션 스타일링의 방법과 닮아있다. 자신의 전문지식과 능력을 타인에게 신뢰할 만하게 내보이기 위한 기본 착장 방식인 것이다. 18세기 영국의 정치가인 필립 체스터필드는 그랜드투어를 떠난 아들에게 서간을 보내 사회적 성공을 위해 타인들에게 어떻게 자신을 제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일러두었다. 그의 서간 모음집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오늘날 자기 계발서의 효시다. 그는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파리를 방문하는 아들이 유행에 뒤떨어졌다는 말을 듣지 않게 하기 위해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는 구두장식용 다이아몬드 버클을 특급우편으로 보낼 만큼 극성스런 아버지였다.

“젊은이는 해외에선 더욱 옷을 잘 입어야 한다. 멋진 옷들이란 일반적으로 유행하는 옷들이지. 다만 멋지다는 것 이상으로 그 옷들은 잘 만들어져야 하고, 쉽게 입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좋은 코트를 걸쳤다는 이유로 품위가 있다는 평을 듣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옷에 대해 존경을 보여주어야 하고, 평범한 옷을 입듯, 수월하게 옷을 소화해내야 품위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옷과 인간의 어울림에는 철저한 계산과 함께, 옷에 대한 존경, 타인을 향한 옷차림의 절제가 있어야 한다. 품위는 이 세 가지의 결합을 통해 우리에게 온다.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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