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폭락으로 재정 적자 위기에 몰린 석유 부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시대 이후(Post-Oil)를 대비해 대대적인 경제 개혁에 나섰다. 원유 의존도를 크게 낮추고 수입을 다변화 함으로써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모하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제2왕위계승자(부왕세자)는 25일(현지시간) 경제개발 계획 ‘비전 2030’을 발표하고 “4년 후인 2020년까지 석유에 의존해온 현행 경제 체제를 끝내겠다”고 공언했다. 비전 2030의 핵심 목표는 국내총생산(GDP) 중 민간부문 기여도를 현재 40%에서 2030년까지 65% 수준으로 끌어 올려 원유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을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우디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지분 일부(5% 이하)를 매각해 증시에 상장한다는 계획이다. 아람코 기업공개(IPO)는 빠르면 내년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아람코 지분 매각 대금은 2조~2조5,000억 달러(약 2,900조원)로 추산된다. 사우디는 아람코 지분 매각 자금을 기반으로 2조 달러(2,300조원) 규모의 국부 펀드(정부출자 투자펀드)를 조성해 수익을 다변화 할 계획이다. 모하마드 부왕세자는 “국부 펀드는 아람코가 아닌 외부 전문가들에 의해 운용되며 사우디 도시 개발에 사용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 수입 중 비석유 부문을 현행 1,630억 리얄(약 50조원)에서 2030년까지 1조 리얄(306조원)로 확충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의료ㆍ교육 부문 민영화도 추진키로 했다.
비전 2030에는 11.6%인 실업률을 7%로 낮추고, 여성 노동인구 비율을 22%에서 30%로 확대하며 GDP대비 중소기업 비율을 20%에서 35%까지 늘리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특히 군수산업을 키워 2030년에는 국방비의 50%를 내수 시장으로 돌리겠다는 방침이다. 모하마드 부왕세자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를 유지할 것으로 가정하고 계획한 것”이라며 “보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국가 개조 계획)은 5월 말이나 6월 초 다시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우디가 ‘탈 석유, 경제 계획’을 내놓은 것은 국가경제를 ‘석유 중독’에서 해방시키고 장기적인 안정성을 도모하려는 포석이다. 유가 폭락으로 인해 지난해 사우디의 재정 적자는 114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주요 산유국간 갈등이 지속되면서 사우디의 파워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도 주요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금융가에서는 “세계 각국이 과거만큼 원유를 필요로 하지 않다는 사실을 사우디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하지만 청사진을 실행하는 데는 난관도 적지 않다. 아람코 지분 매각 및 국부펀드 조성 시기가 일단 명확하지 않다. 2014년 대비 유가가 60% 가까이 폭락한 상황에서 석유기업 지분을 매각할 경우 ‘헐값 매각’ 논란이 일 수 있다. “유가 회복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펀드 조성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 또 세수의 72%를 원유에서 얻던 사우디가 과연 단기간 내에 ‘원유 없는 가계부’를 작성할 수 있을지 의구심도 제기된다. 베이커 공공정책연구소 짐 크레인 연구위원은 “경제구조 다변화가 시급한 상황에서 사우디 정부의 이번 계획은 일리가 있지만, 추진 기간은 비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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