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경대학교가 고 천경자 화백의 기념미술관 임시전시실 개관을 불과 반나절 앞두고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혀 빈축을 사고 있다.
미술품 보존을 위한 항온항습기 미비로 인한 것인데 부경대는 종이를 주로 사용하는 천 화백 작품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임시전시실 개관만 서둘렀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부경대는 대연캠퍼스 청원관 1층에 마련된 ‘천경자 기념미술관 임시전시실’ 운영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26일 밝혔다. 당초 이날 오전 11시 30분 개관식을 열고 운영할 계획이었다. 전시품은 천 화백의 채색화 ‘막간’과 드로잉 작품 등 총 66점으로 부경대는 앞서 25일 천 화백의 그림이 부산에 왔다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운영에 앞서 실시된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기증자 측에서 항온항습기와 환풍기가 없는 점을 지적하며 작품 훼손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부경대는 25일 오후 9시 30분쯤 부랴부랴 무기한 연기를 결정했다.
항온항습기는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 전시품 보존에 필요한 장치로 작품을 장기간 보존하는 수장고(미술관 등에 일정기간 노출된 작품이 보관되는 곳)나 기증자의 요청에 따라 설치된다. 이진철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관은 “작품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경우나 수장고에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종이 재질의 민감성에 대해 정종효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 팀장은 “천 화백의 작품은 종이에 그린 경우가 많다”며 “종이는 습기가 많으면 울고 건조하면 갈라지거나 찢어지는 현상이 발생해 항온항습 시설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시전시실 개관 준비과정도 미흡했다. 부경대는 임시 전시를 작년 말 기증시점에 결정했지만 박물관 시설로 사용하던 공간을 리모델링한 기간은 지난달 말부터 지난 25일까지 약 3주로 짧았다. 공사를 마치자마자 개관을 서둘렀던 것이 문제였다.
시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유모(45ㆍ여)씨는 “최 화백의 드로잉은 일반에 공개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화백의 성격과 기법 등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며 “갑작스런 홍보와 무기한 연기 결정이 의아할 따름이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부경대 관계자는 “마무리 과정에서 기증자가 항온항습 장치와 환풍기 시설의 미비를 지적해 무기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임시 전시실이고 작품을 순환 전시할 계획이어서 항온항습기 설치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부경대는 오는 2020년까지 60억원을 들여 전시실, 영상실, 수장고 등을 갖춘 연면적 1,320㎡ 규모의 천경자 기념미술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천 화백의 장녀 이혜선씨는 부경대에 어머니의 작품 4,000여점을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섭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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